착석하는 조희대 대법원장
조희대 대법원장(가운데)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에서 자리에 앉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출금 중도상환 수수료는 이자제한법상 이자로 볼 수 없다는 첫 대법원 판단이 18일 나왔다.
이는 중도상환 수수료를 채무자가 정해진 기한 전에 돈을 갚은 데 따른 채권자의 손해배상 성격으로 규정하며, 금전을 빌리고 갚는 대가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따라서 중도상환 수수료를 이자제한법상 이자로 간주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최고이자율 제한 적용 및 형사처벌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법리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관련 실무에서 중도상환 수수료의 법적 성격을 둘러싼 혼란을 해소하고, 대출 관련 거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대법원, 중도상환 수수료 이자제한법상 '간주이자' 부정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이날 근린생활시설 신축·분양 사업을 하는 A사가 투자자문업체 B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A사는 B업체 등과 금융자문계약을 체결한 후 B사의 특수목적법인 C사로부터 68억 원을 대출받았는데, 대출약정에는 A사가 변제기 전에 조기 상환하는 경우 상환금액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돈을 중도상환 수수료로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A사는 조기에 상환하면서 약정에 따라 중도상환 수수료 2천881만 원을 지급했으나, 이 돈이 '이자제한법에서 정한 최고이자율을 초과해 받은 돈'이라며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과 이자제한법 위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에서는 중도상환 수수료를 대출약정의 대가로 봐야 하므로 이자제한법상 '간주이자'에 해당하며 최고이자율 제한 규정이 적용된다고 판단했었다.
이자제한법 제4조(간주이자)는 예금, 할인금, 수수료, 공제금 등 그 밖의 명칭에도 불구하고 금전의 대차와 관련하여 채권자가 받은 것은 이자로 간주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중도상환 수수료가 금전 대차의 대가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자제한법상 간주이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중도상환 수수료는 채무자의 기한 전 변제로 인한 채권자의 손해배상으로 지급되는 돈이므로, 본래적 의미의 금전 대차의 대가로 보기 어렵다"고 명확히 밝혔다.
또한, 대법원은 "중도상환 수수료가 이자제한법상 간주이자에 해당하면 최고이자율이 적용되고 형사처벌로 직결될 수 있으므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이며 법리 해석의 신중한 태도를 강조했다.
◆ 채무자 보호 위한 '직권감액' 가능…대부업법 판례와도 차별화
대법원은 중도상환 수수료를 간주이자에 포함하지 않더라도 채무자 보호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자제한법상 '배상액의 직권감액' 등의 조항을 통해 과도하게 부과된 수수료에 대해 법원이 직권으로 감액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채무자 보호라는 입법 취지는 살리면서도, 사적 계약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균형점을 찾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울러 대법원은 중도상환 수수료가 대부업법상 간주이자에 해당하여 대부업법의 최고이자율 적용을 받는다는 기존 판례는 이자제한법이 적용되는 이 사건에는 직접 원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며 법 적용의 범위를 명확히 했다.
다만, 이흥구, 오경미, 박영재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금전소비대차에서 변제기 전 변제에 따른 손해배상액의 예정인 중도상환 수수료는 이자제한법상 간주이자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제시하며 이번 판결에 대한 다양한 법적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대부업법 판례와의 관계에서 중도상환 수수료가 이자제한법상 간주이자에도 해당하는지에 관한 실무상 혼란을 해소하고, 과도한 사적 자치의 제한과 거래 자체의 위축 우려를 방지하면서도, 중도상환 수수료가 부당하게 과다한 경우 이자제한법에 따른 직권감액이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채무자 보호와도 조화를 도모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