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표명한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
사의를 표명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퇴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사법연수원 29기, 대검찰청 차장검사)은 12일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로 촉발된 검찰 내부의 거센 반발에 결국 사의를 표명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는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사법연수원 29기)에 이은 검찰 수뇌부의 연이은 사퇴로, 구심점을 잃은 검찰 조직이 '시계 제로'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다만 검찰 전례를 볼 때 대검 차장 자리를 채우는 신속한 후속 인사로 봉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 노 대행,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에 중도 사퇴

노만석 대행은 지난 7월 심우정 당시 검찰총장이 중도 퇴진하면서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은 지 약 4개월여 만에 물러나게 되었다.

당시 검찰청 폐지가 예고된 상황에서 정부의 기조에 발맞추면서도 조직 내부를 다독여야 하는 쉽지 않은 역할을 떠안은 바 있다.

차기 총장 인선 작업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직무대행 체제로 검찰청 해체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노 대행이 사실상 검찰청의 마지막 간판 수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로 촉발된 노 대행의 책임론이 검사들의 집단 반발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결국 넉 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상황을 맞았다.

일선 검찰청의 평검사와 간부는 물론 핵심 참모진인 대검 간부 사이에서도 사퇴론이 분출하며 노 대행이 더 이상 직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장동 항소 포기' 검찰 내부 반발 확산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를 둘러싸고 검찰 내부에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의 책임론이 확산하고 있는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검사 선서가 걸려 있다. 노 대행은 이날 하루 연가를 내고 고심에 들어갔다.사진=연합뉴스


◆ 내부 반발 확산 배경...검찰개혁과 대장동 항소 포기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의 책임론이 집중된 노만석 대행이 사퇴함에 따라 이번 집단 반발 사태가 진정 수순으로 갈지 여부가 주목된다.

검찰 안팎에서는 법무부 외압 여부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만큼 여진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사태의 지휘선상에 있던 수뇌부 두 명이 물러난 만큼 진정되는 수순으로 갈 수 있다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지금과 같은 집단 반발의 배경에 검찰청 폐지를 뼈대로 하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과 이에 대한 노만석 대행의 어정쩡한 태도에 쌓인 내부 불만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노만석 대행은 검찰청 폐지 내용을 담은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와 개정안 통과를 포함한 중요 국면에서 '검찰개혁'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로 인해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대검이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추진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지난 9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예고대로 통과하자 "검찰총장 대행이 왜 적극적인 저항에 나서지 않는 건지 의문이다", "대검이 구심점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이후에도 검찰 내부망을 중심으로 일선 검사들의 우려와 반대 의견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를 두고 여당의 비판이 쏟아지자 노만석 대행은 "국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지 집단으로 정치적 의견을 표현한 발언은 아니다"라며 사실상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모습도 보였다.

검찰청의 간판을 내리는 '검찰개혁' 움직임에 총장 대행이 사실상 발을 맞추는 듯한 모습을 보여온 데 대한 불만이 누적되는 와중에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가 사실상 쐐기를 박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장동 항소 포기' 검찰 내부 반발 확산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를 둘러싸고 검찰 내부에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의 책임론이 확산하고 있는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노 대행은 이날 하루 연가를 내고 고심에 들어갔다.사진=연합뉴스


◆ '선택적 분노' 논란과 상반된 법조계 시선

검찰 내부의 이번 반발을 두고 '선택적 분노'라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윤석열 정부 당시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석연치 않은 무혐의 처분이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에 대한 심우정 전 총장의 즉시항고 포기 등에는 침묵했던 검찰의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다.

또한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된 대장동 비리 사건과 관련하여 법원이 민간업자 일당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도 배임 혐의 기소 뒤 추가된 증거에 대해선 사실상 별건 수사라며 증거 능력을 제한한 만큼 무리한 수사였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 검찰 간부는 "항소 포기 결정에 대해 반대할 수 있지만 검찰 수장으로서 고민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이렇게 몰아치는 듯한 부분은 앞으로도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1심 판결이나 항소 여부에 대한 정확한 평가라기보다는 정파적인 측면이 너무 커진 것 같다"며 "꼬투리 잡았다고 덤벼드는 듯해 씁쓸한 면도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반면 다른 검찰 고위간부 출신 인사는 "법을 적용하는 검찰 입장에서는 담담하게 원칙대로 하면 되는데 이렇게 복잡하게 할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으며, 한 전직 고검장 또한 "노만석 대행이 자꾸 수사와 재판 외적인 논리를 이야기하니까 더욱 문제가 꼬인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항소 포기 관련 질의 답하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관련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검찰 수뇌부 공백, 후속 인사 '시급'

이번 사태로 검찰 '빅4' 중 사실상 검찰총장 직무대행으로 역할 해야 하는 대검 차장과 국내 최대 규모의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직이 공석이 되면서 후속 검찰 인사에도 관심이 쏠린다.

일단 검찰총장 대행직은 대검 부장 중 서열상 선임인 차순길 기획조정부장(사법연수원 31기)이 물려받게 되며, 이로써 '대행의 대행' 체제가 현실화된 상황이다.

과거 검찰 위기론이 불거졌을 때 총장과 차장 모두 공석이었던 수뇌부 공백 사태는 한 차례 있었다.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임채진 검찰총장이 사직하고 문성우 대검 차장이 대행을 지내다 퇴임한 뒤 한명관 기조부장이 총장 직무대행으로 5일간 근무한 바 있다. 이후 차동민 수원지검장이 대검 차장으로 임명되며 자리를 잡았다.

유사하게 총장과 차장의 사의 표명이 동시에 이뤄졌던 상황으로는 2022년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 이른바 '검수완박(檢搜完剝,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추진 당시 김오수 총장이 사표를 내면서 박성진 대검 차장이 총장 대행을 맡았던 사례가 있다.

그러나 당시 박성진 차장 역시 사직서를 내면서 예세민 기조부장이 '대행의 대행'이 될 뻔했으나, 박성진 차장이 출근을 계속하며 대행 체제가 일단 유지된 바 있다.

다만 검찰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할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수뇌부를 공석으로 마냥 비워두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혼란에 휩싸인 조직 분위기를 추스르고 여론을 다독이며 협조를 끌어내야 하는 구심점 역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급적 이른 시점에 법무부가 후속 인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굳이 대행 체제를 오래 가져갈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곧바로 대검 차장 후속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대검 차장은 검찰총장과 달리 인사청문회를 거칠 필요가 없으며, 고검장급인 이진수 법무부 차관(사법연수원 29기)을 제외하고 현재 고검장은 3명이 있어 이들 중 한 명이 보임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 또한 정진우 검사장(사법연수원 29기)이 사의를 밝힌 뒤 리더십 공백을 피하기 위해 검사장급 전보 인사를 통해 메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후속 인사로 누가 자리를 채우든 이번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는 동시에 정부·여당의 검찰개혁에 보조를 맞춰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되어 당분간 험로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