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를 돌보는 한국 할머니들이 노쇠(신체 기능 급격 저하) 발생 위험이 22% 낮아진다는 대규모 장기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세대 예방의학과 박유진 교수·가천대길병원 가정의학과 황인철 교수·동국대 통계학과 안홍엽 교수 공동 연구팀은 6일 국제학술지 《국제 노인의학·노인학》(Geriatrics and Gerontology International)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2006년 한국고령화연구패널(KLoSA)에 참여한 노인 8천744명을 최대 14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손주 돌봄 그룹(431명, 평균 연령 62.7세)과 비돌봄 그룹(8천31명, 평균 연령 59.5세)으로 나누고 나이·성별·체질량지수·만성질환·소득·흡연·음주 등 모든 건강 요인을 보정한 뒤 노쇠 발생 위험을 비교했다.
손주 돌봄 그룹은 75.4%가 여성이었다.
분석 결과 손주를 돌보는 여성 노인은 돌보지 않는 여성에 견줘 노쇠 발생 위험이 22% 낮았다.
남성 노인도 18% 감소 효과를 보였으나 통계적 유의성은 다소 떨어졌다.
연구팀은 “손주 돌봄이 한국 여성 노인에게 삶의 의미와 사회적 역할을 제공하고, 통원·식사 준비·놀이 등으로 걷기와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늘어 근력을 유지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노쇠의 3대 요소 중 하나인 ‘사회적 고립’이 돌봄 제공 여성에게서 유의하게 낮아진 점이 주목된다. 손주·자녀 세대와의 일상적 접촉이 정서적 연결감을 유지하고 활동성을 높여 신체 기능 저하를 늦추는 완충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한국 특유의 할머니 중심 가정 구조가 돌봄을 단순 가사 노동이 아닌 일상적 사회활동으로 작용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돌봄 시간이 과도하거나 의무감으로 떠안는 경우에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증가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세대 예방의학과 박유진 교수는 “한국에서 손주 돌봄은 이제 단순한 가족 보조를 넘어 노년 건강의 중요한 보호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며 ”정서적 보람과 신체 활동이 적절히 결합된 손주 돌봄은 노쇠를 늦추는 강력한 건강 자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