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위한 사법제도 공청회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오른쪽)을 비롯한 내빈들이 9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국민 위한 사법제도 공청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이 주최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 국민의 사법 참여 확대와 공정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9일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법원행정처와 법률신문이 공동 주최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방향과 과제' 공청회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의 확대부터 판결문 공개, 재판 중계, 노동법원 도입,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개시) 제도 마련까지 폭넓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국민참여재판 확대에 대해서는 "사법 불신을 극복하는 지름길"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양적 확대보다는 내실화가 우선"이라는 신중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 '국민참여재판 확대'...사법 신뢰 회복 대 자원 낭비 논란

이종길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국민의 사법 참여 확대'를 주제로 한 세 번째 세션에서 국민참여재판의 양적 확대를 사법 신뢰 회복의 핵심 방안으로 제시했다.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 신청주의의 한계로 인해 지난해까지 17년간 대상 사건 29만 건(건) 중 약 3천 건만 실시되는 등 저조한 참여율을 보였다.

이 부장판사는 낮은 신청률과 높은 철회율, 그리고 재판부의 높은 배제율을 원인으로 지적하며, 고의 생명침해 범죄 등을 포함한 일부 범죄에 대해 피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필요적 참여재판을 실시하고 재판부의 배제 사유를 제한하거나 구체화하여 배제 결정률을 낮추는 방안을 제안했다.

더 나아가 그는 재판 결과 승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민사 재판에도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어진 토론 세션에서 홍진영 서울대 로스쿨 부교수는 국민참여재판의 양적 확대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홍 부교수는 "국민참여재판의 양적 확대는 곧 다른 재판에 투여하는 인적, 물적 자원의 축소를 의미한다"고 지적하며, 이는 다른 재판에서의 충실한 심리를 저해하여 전체적인 사법 신뢰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법관과 배심원 평결의 높은 일치율이 참여재판 확대의 근거가 되는 것에 대해서도 "판단이 다를 가능성이 적은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을 하는 것은 자원 낭비"라고 강조하며, 배심원들이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판결을 하고 법관이 이를 존중하는 경우가 국민참여재판의 의의를 살리는 경우라고 역설했다.

방청객 중에서는 성폭력 사건의 경우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확률이 높다는 점을 들어 "배심원들이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이는 오히려 사법부 신뢰를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피고인 측의 2차 피해 유발 질문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기념 촬영하는 참석자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9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국민 위한 사법제도 공청회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사법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 논의: 판결서 공개와 재판 중계

'사법의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 세션에서 유아람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판결서 공개 확대와 재판 중계 추진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유 부장판사는 판결서 공개 확대를 두고 "재판 공개의 원칙과 사생활 보호라는 두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이라며, 공개 확대와 함께 사생활 보호 방안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판결서 작성 시 개인정보 기재를 최소화하거나 형식적 기재 사항에서 당사자 주소를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미확정 형사판결서 공개에 대해서는 헌법상 무죄추정 원칙을 고려해 원칙적 공개가 아니라 공익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에만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 중계와 관련해서는 "인터넷 시대에 외부 시청자를 의식한 주장과 진술, 정보 편집과 왜곡을 통한 재판부 압박 등 위험성을 간과할 수 없다"고 경고하며, 영국 대법원이 오락이나 풍자 목적의 재판 중계 영상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을 예로 들어 부정적 측면을 통제할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노동법원 및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필요성 제기

권오성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복잡한 우리나라 노동분쟁 해결 구조를 언급하며 노동법원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노동분쟁 재판에 노동자·사용자 측 전문가나 당사자가 참여할 경우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노동 사건의 특수성을 더욱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준범 인하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 실정에 맞는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개시) 제도 마련의 필요성을 짚었다.

민사소송 개시 전 당사자의 요청으로 법원이 상대측에 문서제출명령 등을 내리는 디스커버리 제도는 사실관계를 보다 명확히 하여 실체적 진실 발견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교수는 현재 민사소송에서 증거가 특정 당사자에게만 편재되는 현상으로 실체적 진실 발견이 어렵고, 증거 확보를 위해 수사기관을 이용하는 고소 남발 상황이 국가 자원 사용을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효율적인 증거 수집을 위해 "모색적 증거 수집 신청을 적대시하는 실무적 경향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정상태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는 토론에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시 국내 기업에 대한 소송 급증과 피고 또는 국내 소재 기업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운영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