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제4권 제98호

-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전 3권 중 2권
- 대한제국 광무 5년(1901년) 5월9일 (木)
- 제국신문 논설

김두천 승인 2023.11.20 09:00 의견 1

<더프리덤타임즈>는 지난 2022년 10월1일 창간을 했다. 인터넷뉴스 창간 전 시스템 작업을 마친 직후 곧바로 비봉출판사에서 출간한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3권 중 제1권을 지난해 9월 20일부터 올해 9월19일까지 당시 보도 날짜를 따라 그대로 전재(全載)했다. 약 125년 전 우리 시대상(時代相)을 그렇게 간접 경험을 했다.

독자들은 매일 혹은 며칠을 띄워 연재된 논설문집을 보면서 1권을 본 것이다.

이제 창간 1주년을 맞아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제2권을 이날부터 연재한다.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에는 서재필이 조직한 학생청년회 ‘협성회’ 토론회를 이끈 이승만이 ‘협성회보’ 제작 편집을 맡았던 신문에서 수록한 것과 23세의 이승만이 ‘매일신문’을 창간 후 수록한 것 그리고 한성 감옥 복역 중(1899년~1904년)에 비밀리 집필하여 감옥 밖으로 보내 제국신문에 게재했던 수백 편의 논설 중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공화제를 채택하고 있는 공화국이다. 공화국으로서 건국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은 작금의 시대 사람들에게는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잘못된 인식과 나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과는 상관이 없었다. 이미 그는 유일 후보로 최소 득표수를 너끈히 넘긴 당선자였다.

예나 지금이나 아랫사람 관리를 잘못하면 윗사람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지만, 이 나라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그 잣대가 너무도 가혹해 그의 훌륭한 업적은 논(論)하는 것조차도 불편하게 되었다.

허나, 만고의 진리 중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계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절대 변하지 않은 진실과 바로 잡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 중에서 다음의 내용은 제일 우선시 되어야 만이 이 땅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모든 언론의 정통성과 역사를 재정립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1898년 4월 9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이 창간한 날이다. 이 신문을 창간한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다.

그는 무지한 국민을 하루빨리 계몽해서 ‘똑똑한 국민’으로 만들고 싶어서 신문을 창간한 것이다.

하지만,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1896년 4월 7일 창간해서 오늘날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서재필의 피는 한국인(人)지 모르지만, 그는 미국인(人)이다. 서대문형무소에 전시된 서재필에 관한 내용을 보면, 그는 이 땅에서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기록 되어 있을 정도로 당시 그는 철저히 미국인(人)이었다.

고로, 대한민국 최초의 일간 신문인 <매일신문> 창간된 날짜에 맞춰 ‘신문의 날’을 바꿔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 국민인 ‘이승만’이 최초로 신문을 만들었다. 훗날 그는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인(人) 만든 신문 날짜에 맞춰 ‘신문의 날’로 정하자!

대한제국 광무 5년(1901년) 5월9일 제국신문 제4권 제98호에 실린 논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제공)

동양 학문에 매우 유여(有餘)하다 하는 선비들도 근일에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단군께서 개국하신 후 사천년 이래로 동양 성인이 마련하신 형정예악(刑政禮樂)과 의관문물(衣冠文物)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려도 태평하였거든, 우리 조상이 이전에 듣고 보지도 못하던 서양 제국의 정치를 본받아 외부(外部)를 설시하여 외국과 교제하는 관원을 두며, 공사를 외국에 파송하여 공연히 세월을 허비하고 오래 두류(逗留)하게 하며, 중추원을 설시하여 의관(議官)을 두며,

각 학교를 설시하여 학도들을 모집하고, 외국 학문을 가르쳐 어린 사람들을 외국 문견(聞見)으로 심장을 바꾸게 하며, 국내에 철도를 부설하여 명산(明山) 내룡(來龍)을 끊고 나가며, 전답을 파상(破傷)하고, 교군(轎軍)과 마부의 생애(生涯)가 없게 하며, 외국 사람들이 도성 안에 들어와서 살게 하기를 허락하여 동서남북촌에 외국인들이 가사(家事)를 광점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집은 점점 적어지고 외국 사람이 좋은 터를 차지하게 하며, 외국 사람들을 관인 이하로 너무 후대하고 본국 사람은 도리어 보호하여 주기를 소홀히 하여, 외국 사람은 기세가 등등하고 본국 사람은 기운이 약하여 외국 사람에게 학대를 받게 하며,

국내 여러 곳에 항구를 열어 나라 요긴한 땅을 외국 사람의 조계지로 점점 들어가게 하며, 연해면에 어채업(漁採業)을 외국 사람에게 허락하여 주므로 본국 어부들이 생애 상에 손해가 크게 있으니, 모든 것이 나라와 인민에게 하나도 유익한 것이 없고 손해만 있으니, 개화를 힘쓰는 사람들은 내 나라를 유익하게 하기는 고사하고 우리나라 해 되는 것이 층생첩출(層生疊出)하게 주선을 하니, 이런 개화를 승상하는 사람은 무슨 심사로 제 조상과 제 몸이 성장한 본국을 기어이 해롭게 하여 우리나라 인민이 초췌하게 하고, 남의 나라만 살이 찌게 하는고,

그렇게 개화하는 꾀로 제 나라를 해롭게 하면 나라가 위태해지는 날에 제 집도 망하리니, 무슨 주의로 이러하는가 하여, 여러 가지 조목으로 분분히 시비를 하는 사람이 종종 있으니, 이런 선비들은 참으로 교주고슬(膠柱鼓瑟: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로 의론하는 말이라.

옛글에 이르되, 군자는 때를 따라 집중(執中)을 한다 하였으니, 이 글의 뜻은, 시세 형편을 따라 일을 적중(的中)하게 한다는 뜻이라. 그런고로 일 년 시절을 두고 보더라도 소연(昭然)히 깨달을 일이 있으니, 여름에는 베옷과 모시옷을 입어야 덥지 아니하고, 겨울에는 옷에 솜을 두어 입어야 춥지 아니 하나니, 이것은 시절을 조차 의복을 변통함이라. 또 우리나라 지방의 소산(所産)을 보고도 깨달을 일이 있나니, 서북에는 농사하는 사람들이 조 농사를 숭상하고, 삼남은 농사하는 사람들이 벼농사를 숭상하니, 이것은 서북 사람이 벼를 싫어서 조 농사만 하는 것이 아니고, 삼남 사람은 조를 싫어서 벼농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땅 기운에 합당한 것을 조차 농사를 편이하게 함이라.

가령 여름에 모시옷 입던 사람이 겨울을 당하여 하는 말이, 나는 여름에 모시옷을 입었으니 어찌 변하여 솜옷을 입으리오 하며, 백설이 분분하고 북풍이 불어 찬 기운이 모골(毛骨)에 송연하여도 억지로 추운 것을 참고, 일신이 흔들리며 죽을 지경이라도 모시옷을 벗고 솜옷을 입지 아니하면, 그 사람이 지혜가 있다 할는지 미련하다 할는지, 응당 천만인이 다 가로되, 미련하다 하리니, 이것은 그 사람이 시절을 따라 의복을 변통하여 입을 줄을 알지 못하는 고로 미련하다 함이라.

정치도 이와 같이 하여, 천하 시세를 따라 변통하여야 옳을 것이거늘, 어찌 옛 법만 숭상하리오. 지금 문명한 구미 각국에서 법을 공평이 하고, 정치를 밝게 하며, 상하 의원을 두며, 학교를 확장하며, 철도를 부설하여 사람이 다니기를 편리하게 하며, 각국에 공영사를 보내어 외국 교제를 친밀히 하고 본국 상민을 보호하니, 이런고로 열국이 다 문명한 지경이 되었거늘, 홀로 우리나라만 외국과 통상조약을 아니하면 천하대세에 어찌 합당하리오.

불가불 시세를 따라 개명에 힘을 쓰자는 것인즉, 자본이 많이 들어야 할지니, 그 자본은 곧 처음에 헛 재물을 많이 버려 남에게 배워야 할지니, 그 배우는 것은 후일 문명의 기초라. 그런고로 외국 속담에 개화 값이 비싸다 하나니, 그런즉 외국인에게 철도, 광산, 삼림, 어업의 이익을 빼앗기는 것이 어찌 자본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리오. 이왕 그렇게 자본을 들이고 수모를 받은 것도 적지 아니하니, 그만하면 본전 찾을 기회가 되어 가는지라.

전국의 사람마다 위로 나라를 위하고 아래로 동포를 사랑하여 날로 대한이 개명하며, 태서 모든 강국과 함께 세계상에 특립(特立)하기를 힘써 그 숱한 자본 빼고 이익을 보려면 어찌 미련하고 완고한 사람의 시비를 두려워하리오. 우리나라가 속히 문명부강 하기는 물론, 남녀노소하고 열심히 힘써 대한제국이 만만세에 유명하게 하는 것이 우리 사람의 직분인 줄 아노라.

(다음 호는 11월22일 제100호)

<편집자 주>

비봉출판사 박기봉 대표는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1970년 서울상대 경제학과 졸업 후 1980년에 비봉출판사를 설립했다. 1994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를 역임했으며, 1966년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맹자(孟子), 충무공 이순신(4권),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신채호), 삼국연의(8권), 독립정신(이승만), 우남 이승만 한시집(漢詩集, 일명 체역집(替役集) 등이 있다.

박기봉 대표의 열열한 협조 덕분에 독자들에게 당시 시대상과 함께 젊은 이승만의 사고(思考)와 사상(思想)을 엿볼 수 있게 하여 큰 감사의 인사를 지면으로 다시한번 드린다.

연재 중 어느 독자는 “이렇게 훌륭한 글들을 우리가 배운 교과서에 단 한 점도 실리지 않았다는 것은 국어학자들의 기만(欺瞞)이고 역사학자들의 배임(背任)이다”라고 했다.

이승만의 ‘독립정신’과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이 대한민국 교과서에 실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제2권을 연재한다.

이번 연재는 지난 1권처럼 당시 보도된 날짜가 아닌 월(月). 수(水), 금(金)요일 순으로 하여 1주일 3번 전재(全載) 한다.

사진=더프리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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