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갑차 M113 위에 미 국기와 러시아 국기를 나란히 매달고 우크라이나 동부 자포리자를 질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사진=연합뉴스

러시아군이 미국 성조기를 매단 미국산 장갑차를 타고 최전선 우크라이나 마을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돼 우크라이나에서 격렬한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 협정이 중요 국면을 맞은 시점에 러시아가 이 영상을 배포한 것은 우크라이나를 조롱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제기되며 충격을 주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방송 RT(러시아투데이, Russia Today)가 텔레그램(Telegram) 계정에 올린 영상은 우크라이나 동부 자포리자(Zaporizhzhia) 한 마을에서 러시아 군인이 탑승한 장갑차 한 대가 러시아 국기와 미국 국기를 동시에 달고 전장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장갑차는 미국이 생산한 엠113(M113)으로, 러시아군이 노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The Telegraph)는 M113이 드론 방어용 케이지(drone defense cage)로 덮여 있는 것으로 보이며, RT가 이 장갑차가 '수리 및 복원'되어 현재는 제70자동소총연대에 의해 '전투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RT는 이 영상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작전 수행 중인 러시아 병사들로부터 제공받았다고 밝혔다.

영상이 언제 촬영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공개 시점이 지난 15일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직후라는 점에 외신들은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레드카펫(red carpet)까지 깔아주며 푸틴 대통령을 극진히 환대했지만, 우크라이나 종전과 관련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반대로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발판 삼아 그간의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났고,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까지 지연시키면서 회담의 승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종전을 밀어붙이면서도 러시아 압박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러시아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상이 공개되자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가 미국의 상징을 자신들의 테러 공격 전쟁에 이용하고 있다"며 "극도의 뻔뻔함"이라고 분노를 표출했다.

이번 영상 공개는 단순히 노획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미국과의 특정 외교적 접촉 이후 미국의 상징을 활용하여 전쟁 상대국인 우크라이나의 민심을 흔들고 조롱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