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터넷 캡쳐
어떤 분이 내게 ‘원장님 글은 어렵기도 하지만 재미가 없어 못 읽겠어요.’라고 한다. 글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읽혀지기 위해 쓰는 것인데 읽히지 않으면 쓸 이유가 없다. 재미있게 쓰지도 못하면서 나는 오늘 또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며 내게 반문해본다. 왜 글을 쓰는지를.
나의 내면으로 그 이유를 추적해 가면 최종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나의 이기심이다.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시대의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 침묵하지 못하는 가벼움, 결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과 고독을 도중에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기성세대로서의 죄책감, 국민들의 무지와 무고한 희생에 대한 안타까움, 분노와 복수심 등의 복잡한 심경과 그것을 해소하고 충족하려는 이기심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 글을 쓰는 동기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다. 나는 본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그것이 나쁜가?
우연히 세계 개인주의 지수라는 것을 오늘 SNS에서 보게 되었다. 이 지수가 높으면 개인주의 성향이 높고 낮으면 집단주의 성향이 높다. 한국인은 18점으로 집단주의가 강하다. 가장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는 미국으로 91점이다. 영국과 호주 등 앵글로색슨계 국가들의 개인주의 점수가 높았다. 그 다음은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이다. 반면 중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과테말라가 6점으로 가장 집단주의적이고, 에콰도르 8, 베네수엘라 12이다. 아시아 국가들 중 파키스탄 14, 중국 20, 인도네시아 14, 대만 17, 홍콩 25, 싱가포르 20, 일본이 46으로 가장 높다.
한국인의 집단주의 성향으로 보아서는 전체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어울릴 것 같은데,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니 한국이라는 나라는 참 모순되고 이중적이다. 나라가 둘로 동강난 것도 애통한 일인데 동강난 남쪽 나라도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르니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이 참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주의가 과연 애초부터 한국인의 DNA에 없었을까? 아니면 점점 사라진 것일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 인생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장기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이기주의(self interesting)는 약해지고, 근시안적 이기주의(myopic selfishness)는 강해진 것 같다. 개인주의도 자유를 기반으로 두는 것은 약해지고 평등을 기반으로 두는 것은 강해졌다. 평등을 기반으로 두는 개인주의는 개인주의라고 부를 수도 없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개인주의, 이기주의는 매국노나 범죄자와 동격이고, 집단주의보다 더한 욕이다. 한국인은 누구나 이 단어로 자신이 묘사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화를 낸다. 개인주의에 대한 편견 때문에 한국에서 개인은 거대한 조직에 붙어 있는 먼지처럼 보인다. 개인주의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는 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는 만큼 다급한 과제다.
개인주의는 자유주의다. 개인주의는 남과 다르게 유일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침해하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자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인 것이다. 개인주의의 출발점은 인류의 기원에 있다. 국가가 태초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개인이 존재하고 있었다. 국가가 개인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개인이 국가를 만든 것이다. 개인은 국가의 어머니이므로 국가는 개인(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사람까지 모두)을 존중해야할 의무를 가진다.
개인주의는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다. 자유가 사라지면 개인주의도 사라진다. 자신의 자유만큼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으면 개인주의는 사라진다. 르네상스, 종교개혁으로 개인주의가 도래한 유럽에서는 개인의 지성과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자유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러자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과학 문명이었다. 수많은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와 생활이 편리해졌고, 부를 창출하였다.
개인주의가 현대문명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개인주의 지수가 높은 나라들이 기술, 과학, 그리고 부를 독차지하고 있다. 집단주의 지수가 높은 나라들은 전부 이들 나라로부터 발명품, 과학기술은 물론이고 정치제제, 각종 제도, 문화, 예술, 철학과 사상, 그리고 이념까지 150년 넘게 수입해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개인주의는 수입해 쓰지 못하기 때문에,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문화의 깊이가 낮고, 독자성과 독창성이 부족한 것이다.
개인주의가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면 이기주의는 양심과 불가분의 관계다. 이기주의자는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무엇이 최선의 것인지를 알고 그것을 이루어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양심에 어긋나는 것은 결코 최선의 것이 될 수 없다. 진정한 이기주의자라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거나, 사람을 해치는 일은 할 수가 없다. 나쁜 짓은 아무도 목격하지 않아도, 아무도 보복할 수 없어도, 아무리 잘 감출 수 있어도 결코 이기적인 일이 되지 못한다. 나쁜 짓을 자신도 모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나쁜 짓으로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어도 그는 절대로 풍족한 부자가 될 수 없으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멋진 삶을 살지 못한다. 그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미성숙한 자, 범죄자, 악인 일뿐이고, 그가 사는 세상은 우울하고 고독한 감옥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가장 많이 연극으로 상연되는 리처드 3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기형이고, 미완성이고, 반도 만들어지지 않은 채
너무 일찍이 이 생동하는 세계로 보내져
쩔뚝거리고 추한 나의 모습에
곁에만 지나가면 개들도 짖는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날을 즐기는
사랑하는 자가 될 수 없기에
나는 악인이 되기로 굳게 마음먹는다." -1막 1장.
리처드 3세는 꼽추에 절름발이였다. 자신의 흉한 외모 때문에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랑받고 싶었다. 왕이 되면 그 권력으로 휜 등과, 절름발이로 얻지 못했던 존경과 사랑을 얻게 될 줄 알았다. 그는 왕의 권좌에 오르는데 방해가 되는 남자 친척들을 어린아이까지 제거해 버렸다. 그는 결국 왕이 되었지만, 그 대가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을 수 있는 참된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렇게 양심이 없는 이기주의는 하지 않았으면 얻을 수 있었던 것을 해서 잃게 만든다. 1등이 되려고 커닝을 했다가 들켜서 꼴등보다 못한 시험 칠 자격마저 없는 사람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자신이 한 행동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갖고 싶었던 것이 파괴 됐음을 깨닫는 가장 큰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멋진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기주의란 멋진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이다.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이기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전술한 것과 같이 미성숙, 어리석음, 범죄, 악행 일뿐이다.
개인주의가 사라지면 자유가 사라진다. 이기주의가 사라지면 양심이 사라진다. 사라진 자유, 사라진 양심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개인주의가 사라진 땅은 집단주의 차지가 되고 말 것이다.
오순영 외부 칼럼리스트 /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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