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당 앞에 세워진 환영 조형물.사진=연합뉴스

경상북도 봉화군에 한국에 정착한 베트남 왕족의 후예 '화산 이씨' 집성촌이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를 상징하는 'K-베트남밸리'로 새롭게 조성된다.

지난 14일 오전,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일원에서는 한국 시골 마을의 전형적인 풍경 속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K-베트남밸리 다문화커뮤니티센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모습이 포착되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눈에 띄는 커다란 한옥 형상의 건물은 일반적인 한옥과 달리 높은 지붕과 끝이 솟아오른 처마를 지녀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이곳이 베트남 왕족 후예인 화산 이씨의 집성촌임을 암시하는 'K-베트남밸리'라는 명칭에서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K-베트남밸리 다문화커뮤니티센터.사진=연합뉴스


화산 이씨는 안남국(安南國·현 베트남) 리(Ly) 왕조 개국왕 이공온(李公蘊)의 6대손 이용상(李龍祥)을 시조로 한다.

이용상은 11세기 베트남에 정란이 발생하여 왕족이 멸족될 위기에 처하자 고려로 망명했고, 당시 조정은 그에게 '화산 이씨'라는 본관을 하사했다.

봉화군은 이용상의 둘째 아들인 이일청이 안동부사로 부임하며 화산 이씨 집성촌이 형성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이곳에는 이용상의 13세손인 이장발의 충효 정신을 기리는 '충효당'이 있는데, 이곳의 단아하게 새겨진 연꽃 문양은 베트남의 국화이자 이 집성촌의 특별한 역사를 기품 있게 알리는 상징이다.

화산 이씨 봉화종친회 사무국장 이시창씨.사진=연합뉴스


화산 이씨 봉화종친회 사무국장인 이시창 시민은 충효당에 앉아 화산 이씨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지금은 7가구만 살고 있는 집성촌이지만, 어렸을 때는 상당히 많은 화산 이씨들이 살았다"며 "어렸을 적 이곳에서 할아버지에게 조상에 대해 교육받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시창 사무국장은 "할아버지는 '우리가 베트남 왕족의 후손이니 항상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한다'며 베트남 왕족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다"고 덧붙였다.

그는 1992년 베트남과 수교 전에는 '월남전' 등의 이유로 외지인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으나, 수교 이후 베트남으로부터 초청받았을 때 집안 어른들이 매우 기뻐하셨던 기억을 전했다.

이시창 사무국장은 "선대 어른들은 한반도로 이주한 화산 이씨의 800년 반듯한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셨다"며 "망명이라는 슬픈 역사를 한국과 베트남의 새로운 접점으로 삼아 기쁨으로 승화시키려는 사명감으로 K-베트남밸리 조성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봉화군 화산 이씨 집성촌.사진=연합뉴스

이곳에는 화산 이씨 후손들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이주해온 주민들도 함께 살고 있다.

지난 3월 봉화군으로 이주한 선예나(여, 39) 시민은 2006년 한국에 온 베트남 출신 귀화 국민이다.

선예나 시민은 봉화군에 거주하며 화산 이씨 종친회와 함께 K-베트남밸리 조성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봉화군에 리 왕조 후손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베트남 커뮤니티(Community)를 통해 알게 됐다"며 "K-베트남밸리 조성은 우리 아이들에게 베트남 조상이 한국에 있었다는 역사를 알리고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봉화군으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주민과 이주민이 한마음으로 추진하는 K-베트남밸리 조성 사업은 봉화군의 중점 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충효당에 걸린 절명시와 아래에 새겨진 연꽃.사진=연합뉴스


봉화군은 화산 이씨 집성촌인 봉성면 창평리 일원 11만8천890제곱미터(㎡) 부지에 2033년까지 약 2천억원(원화)을 투입하여 K-베트남밸리를 조성한다.

해당 부지에는 역사지구, 문화교육지구, 휴양지구, 교류의 길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역사지구에는 베트남 리 왕조 유적지를 개발하고 리 태조 동상 등 역사 시설물을 설치한다.

문화교육지구에는 한-베 역사문화콘텐츠(contents) 센터, 다문화국제학교, 연수·숙박 시설 등을 짓는다.

휴양지구에는 다랭이논 체험장, 연꽃 모양의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 사당 및 정원을 조성하며, 교류의 길에는 탐방로와 수변정원, 전망대, 인도교 등을 설치할 계획이다.

충효당.사진=연합뉴스


봉화군 관계자는 "베트남 리 왕조 후손의 유적(충효당, 유허비, 재실 등)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고, 후손들이 거주하는 유일한 곳이 봉화군"이라고 강조하며 "한-베 양국을 잇는 인적·물적 네트워크(network)의 거점이 될 수 있는 베트남 다문화인들의 요람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봉화군은 오는 24일 K-베트남밸리 다문화커뮤니티센터(Community Center) 준공식과 함께 리 태조 동상 제막식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