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백신 접종, 무료 건강검진, 조금만 아파도 저렴하게 받을 수 있는 진료, 세계 최고라는 국민건강보험에도 왜 한국은 출산율 세계 최저, 자살률 세계 최고일까? 막대한 세금을 걷어 국민 건강에 쏟아부어도 어찌 건강한 사람은 별로 없고, 시름시름 앓는 사람은 수두룩하고, 갈수록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이 늘어나고, 마치 저녁에 깔린 어스름처럼 우울함이 국민 정서에 널리 퍼지게 되었을까?
과거에는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은 주로 노인이었지만, 지금은 이삼십 대 젊은이들 중에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왜 나만 고통받고, 나만 힘들게 살아야 하고, 나만 즐겁지 못하냐는 원망이 서려 있는 것 같다.
국뽕 유튜브 (사진=웹진 인벤 - 인벤 제공)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SNS에는 소위 “국뽕 동영상”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런 동영상들은 국민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고, 타국을 배척하고 깔보게 만드는 한편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 같은 재미와 우월감까지 주기 때문에 자꾸 반복해 보게 만들므로, 동영상 제작자는 돈을 벌기 위해 국뽕 동영상 제작에 더욱 열을 올리는 것이다.
또한 아름답고 멋지고 세련된 것, 신기한 것, 즐겁게 놀고먹는 것은 너도나도 자신의 계정에 올려 자랑하므로 그것을 보는 사람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고통 없이 재미있게 사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지난 2022년 6월14일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0년 자살자 수는 1만3천195명으로 전년보다 604명(4.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낳아 기르기 좋을 때는 아기를 낳지 않았고, 기르기 어려울 때는 많이 낳아 길렀다. 그리스·로마 전성기 때도, 서구 유럽의 급격한 경제성장 때도 출산율이 급감했지만, 전쟁 후 폐허 속에서는 출산 붐이 일어났다. 경제적 여유가 출산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정설이지만, 한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출산율이 세계 통계 역사상 가장 낮은 데다가 자살률은 매우 높고, 경제적 여유도 있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자살은 현실을 실제보다 비관적으로 보는 우울증이 원인이다.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은 자신의 대를 끊는 것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자살과 같은 성격이다. 따라서 자연의 질서가 파괴된 것 같이 기이할 정도로 낮은 한국 출산율은 국민 정서가 된 우울을 하나의 원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우울은 시야를 좁게 만들어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른 여러 방법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현재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현재와 연관된 과거와 미래는 더욱 보지 못한다. 우울함에 빠진 사람은 어떤 극적인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것과 관련된 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에 묶여 있는 개처럼 사태를 향해 짖고 끙끙대고 침을 흘리다 결국에는 쉽게 길들여지고 마는 것이다.
우울은 그것을 핑계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는 나태를 유발하는데 이런 나태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직업을 갖지 않고, 부모 집에 얹혀살면서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살게 되는 것이다. 우울함이 마음과 머리에 완전히 스며들면 나만 외롭고,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망상은 분노를 일으킨다. 남들이 잘사는 것에 화가 나고, 외로워서 화가 나고, 화만 내는 자신이 싫어 화가 나서 차라리 세상이 멸망하기를 고대하고, 거리에 나가 칼을 휘두르고, 별것도 아닌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전통적 도덕관념을 해체하고 가치관의 전도를 일으키는 것이다.
사진=https://www.imf.org/en/Publications/fandd/issues/2020/03/lessons-from-singapore-on-raising-fertility-rates-tan 캡처
한편으로는 우울을 감추거나 벗어나기 위해 인생 별것 없다며 즐기며 살자는 것을 인생 모토(신조)로 내걸고 저급한 향락에 취해 사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더 깊은 우울함에 빠지거나, 더 자극적 향락을 갈구하다 짧은 인생을 비참하게 마감한다.
연애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결혼해도 아기를 낳지 않으려는 현상은 자명하게 자기 파괴적이라 비자연적이다. 자연은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것, 다시 말해 그냥 내버려 두어야 자연이다. 비자연적인 것은 너무나 인공이 가미되어, 그렇게 된 것이다. 자연을 더 자연적으로 만들려면 자연을 인공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출산율을 회복하려면 자연으로 회귀해야 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정의는 적법하게 집행되어야 하지만, 규제와 감시는 최소화해야 한다. 실수할 수도 있고, 죄를 지을 수도 있고, 병에 걸릴 수도 있어야 인간이다. 개성을 무시하고, 다양성을 해치고, 개인을 집단의 부속품으로 취급하고, 획일화하는 교육과 정책은 당장 중단해야 하며 국민은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망국병인 우울에서 나라를 살리고 인구 소멸을 막는 방법이다.
오순영 칼럼리스트 / 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