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듣기 좋은' 개헌, 현실은 '공허한 울림'
이재명 정부가 출범 두 달 만에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거기에는 [국가비전]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 [국정원칙]으로 ‘경청과 통합’, ‘공정과 신뢰’, ‘실용과 성과’, [국정목표]로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 ‘세계를 이끄는 혁신경제’, ‘모두가 잘사는 균형성장’, ‘기본이 튼튼한 사회’, ‘국익 중심의 외교안보’ 등이 제시되었다.
'경청', '통합', '공정', '신뢰' 등 아름다운 단어가 총동원되었지만, 작금에 펼쳐지고 있는 정부·여당의 삼권분립마저 파괴하려는 일당독재 수준의 현실 정치와는 너무나도 다른 괴리감만 줄 뿐이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혔지만 결국 조롱거리로 전락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표어만큼이나 국민들에게 벌써 공허한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주목할 점은 국정과제 1호로 내세운 개헌이다.
개헌을 첫 번째 과제로 꼽는 것은 고장 난 녹음기를 돌리는 듯한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 자조를 자아내는 식상한 논의이다. 이른바 87체제 이후 대통령마다 개헌을 약속했지만 단 한 번도 실현된 적 없는 허언(虛言)에 그쳤던 까닭이다.
이번 개헌 의제 가운데 국민적 관심은 단연코 ‘4년 연임제 도입’이다.
지난 3월까지 대선 전 이재명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여야 후보들은 “차기 총선과 대선 실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개헌을 하자”고 주장했었다.
유일하게 개헌에 반대하던 이재명 대통령이 느닷없이 개헌을 첫 번째 국정과제로 내세우는 데 대해 국민의힘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개헌은 정권 연장과 장기 집권의 포석일 수 있다”고 의구심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 '사법 리스크' 우려 증폭…진정성 의문
어찌하여 대다수 국민들이 4년 연임 개헌과 관련하여 그토록 의구심을 갖는가.
단적으로 말해 이재명 대통령이 시지포스의 돌덩이처럼 지고 있는 '사법 리스크'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특별재판부까지 만들며 대한민국의 검찰과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이 대통령 본인에게 무거운 짐처럼 따라붙어 있는 사법 리스크 때문임은, 곧 대통령 임기 중에는 가까스로 뒤로 미뤘지만 퇴임 후 결국 재개될 수밖에 없기에 사전에 그 돌덩이를 치우려는 데 목적이 있음은 삼척동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노림수가 아닌가.
심지어 퇴임 후 포토라인에 서는 두려움 때문에 '국민이 주도하는 개헌'이라는 국정기획서 보고서의 언급대로 국민 여론을 앞세워 [헌법 제128조 ②항]에 적시된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는 조항마저 삭제하여 임기를 연장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는 것이다.
국민의 신성한 권리인 개헌을 자신의 사법 리스크 해소와 권력 연장의 도구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깊다.
◆ 헌법 위에 대통령 없다…권력분립의 정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듯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민 없고, 헌법 아래에서 굴종하는 국민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가 대통령이든 대법원장이든 국회의장이든 헌법 위에 설 수는 없는 법이다.
모두가 헌법 앞에는 평등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삼권분립을 천명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에 반하는 “권력엔 서열이 있다. 선출 권력인 입법부 국회가 임명직인 사법부보다 높다” 같은 대통령의 발언이나, “추미애 법사위원장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으로 공감한다”는 대통령실의 오락가락 발언 등은 심히 염려스럽다.
"선출 권력이 우위"라는 대통령의 주장에 대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의 “대한민국 헌법을 한 번 읽어보시라”는 답변을 다시 한번 숙독할 것을 권고하고 싶다.
사실 '4년 연임제 개헌'은 개헌운동가인 필자가 오래 전부터 주장했던 것이기도 하다. 87체제의 산물인 '5년짜리 단임 대통령제'의 폐단은 지난 38년간 배출된 8명의 대통령 모두가 불행했던 역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국민들에게도 '5년짜리 대통령 시대'는 악몽이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 대통령제로 바꾸자"는 여론이 늘 압도적이었던 이유이다.
◆ 개헌, 정치적 유불리 넘어 국민 총화로
하지만 개헌마저도 적대적 진영정치의 틀 속에서 정략적인 의도로 진행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미래에 비극의 씨앗을 심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개헌만큼은 사회통합 차원에서 진영과 정파를 뛰어넘어 모든 국민이 공론의 장에 참여하는 총화(總和)로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흔히 교육을 백년대계라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을 만드는 것만큼이야말로 백년대계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정권 연장이나 사법 리스크 회피와 같은 특정 목적을 위한 개헌이 아닌, 오직 국민의 염원을 담은 진정한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기를 강력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