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제1권 제12호

- 대한제국 광무 2년(1898년) 3월19일
- 협성회회보 논설

김두천 승인 2023.03.19 19:18 | 최종 수정 2023.03.19 19:21 의견 0

미국 건국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이다. 이는 인류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말들 중에서 “공통의 합의에 의해 정의된 법이 절대 개인에 의해서 짓밟혀서는 안 된다”라는 말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을 준다.

우리나라도 공화제를 채택하는 공화국으로서 건국 대통령이 있다.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잘못된 인식과 나쁜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실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과는 상관이 없었다. 이미 그는 유일 후보로 최소 득표수를 너끈히 넘긴 당선자였다.

지면상 긴 얘기는 힘들지만 이승만기념관에 남겨진 글을 인용으로 대신한다.

“나쁜 이미지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런 대중적이고 속화된 인식이라는 게 어디까지가 맞는 얘기이고, 어디서부터 과장된 것일까를 점검해야 한다.”

1898년 4월 9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이 창간한 날이다.

이 신문을 창간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이승만이다.

그가 신문을 창간한 것은 무지한 국민을 하루빨리 계몽해서 ‘똑똑한 국민’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봉출판사 박기봉 대표가 간행한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1, 2, 3> 시리즈를 ‘더프리덤타임지’ 창간에 맞춰 연재하려고 한다.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은 총 3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논설은 서재필이 조직한 학생청년회 ‘협성회’ 토론회를 이끈 이승만이 ‘협성회보’ 제작 편집을 맡았던 신문에서 수록한 것과 23세의 이승만이 ‘매일신문’을 창간 후 수록한 것 그리고 한성 감옥 복역 중(1899년~1904년)에 비밀리 집필하여 감옥 밖으로 보내 제국신문에 게재했던 수백 편의 논설 중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더프리덤타임지’는 비봉출판사에서 출간한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1, 2, 3>에 수록된 논설 중에서 먼저 제1권 협성회회보(1898.1.~1898.3.), 매일신문(1898.4.~1898.7.), 제국신문(1898.7.~1904.3.), 태평양잡지(1913.11.~1930.11.), 태평양주보(1931.7~1941.5) 중에서 오늘의 날짜에 맞춰 그 날에 쓰여진 내용을 전재한다.

<덧붙이기>

지난해 12월29일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제1권 제119호로 제1권에 수록된 제국신문은 끝이 났다. 2023년 1월1일부터는 제1권 첫 장인 협성회회보를 전제한다.

대한제국 광무 2년 3월19일 협성회회보에 실린 논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시무(時務)를 의론하는 자 혹 말하기를, 이미 일본에 허락하여 절영도(絶影島) 안에 석탄고를 짓게 하였은즉, 지금 아라사가 그 전례로 요구하는데 허락지 아니함은 옳지 않다 하니, 그는 생각지 못하고 한 말이라. 대저 대한정부에서 대한 때을 가지고 임의로 하는 권리가 있은 즉,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아니 주는 것이 정의에 고르지 못하다고는 할지언정, 경계(境界)에 틀리다고 할 수는 없는지라.

또한 전에 어찌하여 일본에 땅을 좀 빌려주었다고 동맹 제국을 다 같이 대접하자면, 영(英), 미(美), 법(法), 덕(德: 도이치), 아(俄: 러시아) 오(奧: 오스트리아), 의(意: 이태리), 일(日) 제국을 다 공평이 빌려주어야 할 터이니, 삼천 리 강산이 몇 조각이나 남겠으며, 겸하여 그 후에는 세계 각국이 다 토지를 바라고 대한과 통상 약조를 청할 터이니, 누구와는 약조하고 누구와는 아니하면 또 공평치 못하다 할 터인즉, 동서 칠십여국을 무엇을 가지고 고루 정답게 대접하리오.

또 말하되, 땅을 아주 주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는 것인즉 관계치 않다고 하니, 이는 전국을 다 주어도 빌려주는 것인즉 관계치 않다고 하는 말이라. 만일 남이 나와 정이 있다고 내 물건을 달라는 사람은 내 친구가 아니라 곧 나를 꾀여 물건을 탈취하자는 도적이라. 내 것이 다 없어져 더 가져갈 것이 없기까지만 정다운 친구이니, 그런 친구는 없는 것만 못한지라.

또한 여전에 일본에 빌려줄 적에는 말 한 마디 없다가, 지금 아라사가 청구하는데 이처럼 시비가 많으니, 이는 우리가 일본에 후하고 아라사에 박하게 하는 듯하나, 연전에는 우리가 적연(寂然)히 몰랐고, 지금인들 정부에서 특별히 백성에게 광고하여 우리를 알게 하여 준 것은 아니로되, 요행이 황천(皇天)이 묵우(默祐) 하심을 힘입어 국중(國中)에 신민이 생긴 후로 그 중에서 새로 배운 것도 많거니와 첫째 내 나라 정부 시세와 국중 소문과 외국 형편을 소상히 알아, 상하원근(上下遠近)이 정의(情誼)를 상통하여 각기 이산(離散)한 마음이 적이 합심할 만하게 된지라. 우리가 특별히 국은(國恩)을 남보다 더 입어 유독 충성이 갸륵하다는 것이 아니라, 일을 알고 본즉 진실로 애달고 원통한 중에, 당초에 우리가 내나라 일을 남의 일 보듯 하는 까닭에 이런 일이 생겼은즉, 다만 말로만 시비할 뿐 아니라, 장차 목숨을 결단코 이런 일을 눈으로 보지 않기로 작정할지라.

그런즉 우리가 암만 말하여도 실효가 없으니, 말하는 우리나 말아니하는 남이나 조금치도 다를 것이 없다 할 듯하나, 말만 하여도 국중에 백성이 있는 것은 보임이오, 또한 전국 백성이 우리와 같이 일심으로 한 마디씩 반대할 만하게 되었으면 당초에 남의 토지를 달랄 리도 없거니와, 설사 달라고 하더라도 그동안 대한 일천이백만 명 백성 중에서 무슨 거조(擧措)가 있을는지 모를지라.

그런고로 지금 우리가 내 물건 달라는 친구를 시비함이 아니라, 이 백성 중에 몰라서 아는 체 못하는 자와,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자의 죄와 책망이 더 큰지라. 우리는 바라건대, 우리 동포들은 모사(某事)를 물론하고, 대한 일이라 하거든 다만 내 나라 일로만 알 것이 아니라 내 집안 일로 아시고, 각기 생각 가는대로 서로 모여 쓸데없는 공론과 시비라도 좀 하여 보시오. (이승만)

대한제국 광무 2년 3월19일 협성회회보에 실린 내보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제공)


<내보>

○ 들으니 일전에 일본 정부에서 서울 있는 일본 공사관으로 전보하였는데, 연전에 약조한 절영도 석탄고 기지를 대한 정부에서 도로 찾으려 하거든 즉시 돌려보내라고 하였다 하니, 우리는 이 말이 적보(的報)한지 모르거니와, 일본서 그 탄고 기지 돌려보내기를 매우 기뻐할 줄로 믿는 것이, 당초에 일본서 아무쪼록 우리나라 독립권을 굳게 하려 함이 위초(爲初)요, 비위조(非僞造). 이런 기회를 당하여 정부에서 일초일목(一草一木)이라도 내 나라 것을 다시 찾기를 바라오.

○ 이달 십이일에 나라를 사랑하는 백성들이 종로에 모여 연설할 적에 한 사람이 말하기를, 백성이 아무리 내 나라 자주권을 찾으려 하나 군사가 이미 아라사 사관의 지휘를 받으니, 군권을 남의 손에 쥐이고 앉아 무슨 일을 하겠냐 하거늘, 옆에 섰던 병정 하나가 그 말을 듣고 격분하여 팔을 뽐내며 하는 말이, 병정은 대한 백성이 아니며 나라 위한 마음이 없단 말이냐 하였다 하니, 이런 말은 과연 듣는 자로 하여금 충의를 격동케 하는지라. 이 사람의 굳센 충의를 우리 동포를 대하여 극히 감격하게 여기노라.

대한제국 광무 2년 3월19일 협성회회보에 실린 외보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제공)

○ 청국 정부에서 여순 구에 있는 사령관에게 명하기를, 아라사와 혼단(釁端) 내지 말고 아라사가 하자는 대로 하여 양국에 싸움이 없게 하라 하였는데, 그 사령관이 자기 수하에 있는 장관에게 말하되, 교주 만에 있던 사령관같이 도망하여 아라사와 시비 되지 않게 하여 땅을 비워 놓음이 가하냐, 정부 명령이 있더라도, 우리가 도망하는 것이 우리 선왕과 전국 인민에게 부끄러운 생각이 있으면 어떤 나라든지 싸워 우리나라 토지를 우리가 죽기까지 남에게 있으면 어떤 나라든지 싸워 우리나라 토지를 우리가 죽기까지 남에게 주지 않음이 가하냐 하니, 그 장관들이 다 일심으로 말하기를, 우리가 죽기 전에는 여순 구를 남의 나라에 주지 말자 하였다더라. (독립신문)

-우남 이승만 논설문집 1권 협성회회보 신문 끝-

(다음 연재는 1권 제2부 매일신문 4월9일 연재)

<편집자 주>

대통령(President)이라는 용어는 회의를 ‘주재한다(preside)’라는 말에서 왔다.

미국 사람들은 왕을 싫어했으므로 왕에게 사용하던 극존칭 대신 미스터(Mr.)를 대통령직 앞에 붙이는 관행을 만들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대통령이라는 칭호에는 왕으로부터의 독립,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정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근대민주주의 사상이 녹아 있다. King에서 President로의 대전환이다.

1904년 29세의 이승만은 고종 퇴위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한성 감옥에 갇혀 있던 와중에 <독립정신>을 저술했다.

‘풍전등화’ 와도 같은 조선인들의 각성과 계몽을 위해서 쓴 책이다.

어느 언론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지금도 뇌리에 남는다.

“내가 29살이었을 때 이승만같이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쓰지도 못했겠지만, 만약 내가 29살 때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읽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당시 시대상에서 통상과 외교를 이야기했던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본지가 수록한 논설로 재해석하고 제대로 인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특히,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1896년 4월 7일 창간해서 오늘날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기념하고 있는데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듯이 서재필은 미국인이다.

하지만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최초로 일간 신문인 <매일신문>을 1898년 4월 9일 창간을 했다.

이에 ‘신문의 날’을 4월 7일이 아닌 4월 9일로 바꾸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한편, 본지(本紙)에 전재하는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은 비봉출판사 박기봉 대표에게 수락을 받았다.

사진=더프리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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