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제4권 제97호

-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전 3권 중 2권
- 대한제국 광무 5년(1901년) 5월8일 (水)
- 제국신문 논설

김두천 승인 2023.11.17 09:00 의견 0

<더프리덤타임즈>는 지난 2022년 10월1일 창간을 했다. 인터넷뉴스 창간 전 시스템 작업을 마친 직후 곧바로 비봉출판사에서 출간한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3권 중 제1권을 지난해 9월 20일부터 올해 9월19일까지 당시 보도 날짜를 따라 그대로 전재(全載)했다. 약 125년 전 우리 시대상(時代相)을 그렇게 간접 경험을 했다.

독자들은 매일 혹은 며칠을 띄워 연재된 논설문집을 보면서 1권을 본 것이다.

이제 창간 1주년을 맞아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제2권을 이날부터 연재한다.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에는 서재필이 조직한 학생청년회 ‘협성회’ 토론회를 이끈 이승만이 ‘협성회보’ 제작 편집을 맡았던 신문에서 수록한 것과 23세의 이승만이 ‘매일신문’을 창간 후 수록한 것 그리고 한성 감옥 복역 중(1899년~1904년)에 비밀리 집필하여 감옥 밖으로 보내 제국신문에 게재했던 수백 편의 논설 중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공화제를 채택하고 있는 공화국이다. 공화국으로서 건국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은 작금의 시대 사람들에게는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잘못된 인식과 나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과는 상관이 없었다. 이미 그는 유일 후보로 최소 득표수를 너끈히 넘긴 당선자였다.

예나 지금이나 아랫사람 관리를 잘못하면 윗사람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지만, 이 나라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그 잣대가 너무도 가혹해 그의 훌륭한 업적은 논(論)하는 것조차도 불편하게 되었다.

허나, 만고의 진리 중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계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절대 변하지 않은 진실과 바로 잡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 중에서 다음의 내용은 제일 우선시 되어야 만이 이 땅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모든 언론의 정통성과 역사를 재정립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1898년 4월 9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이 창간한 날이다. 이 신문을 창간한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다.

그는 무지한 국민을 하루빨리 계몽해서 ‘똑똑한 국민’으로 만들고 싶어서 신문을 창간한 것이다.

하지만,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1896년 4월 7일 창간해서 오늘날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서재필의 피는 한국인(人)지 모르지만, 그는 미국인(人)이다. 서대문형무소에 전시된 서재필에 관한 내용을 보면, 그는 이 땅에서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기록 되어 있을 정도로 당시 그는 철저히 미국인(人)이었다.

고로, 대한민국 최초의 일간 신문인 <매일신문> 창간된 날짜에 맞춰 ‘신문의 날’을 바꿔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 국민인 ‘이승만’이 최초로 신문을 만들었다. 훗날 그는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인(人) 만든 신문 날짜에 맞춰 ‘신문의 날’로 정하자!

대한제국 광무 5년(1901년) 5월8일 제국신문 제4권 제97호에 실린 논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제공)

통천하 세계 만국을 물론하고, 사람의 종류는 다 일반이라. 이목구비와 사지백체(四肢百體)도 한 가지인즉, 불에 대면 뜨거운 줄 알고 어름에 대면 찬 줄 알기는 내나 남이나 다를 것이 없거늘, 우리나라 사람의 간신히 사는 것과 서양 사람이 화려하게 사는 것을 비교하여 보면, 우리는 당초에 불의 뜨거움과 어름의 찬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로다.

태서 제국에 궁실누대(宮室樓臺)와 완호기물(玩好器物)의 굉장하고 화려함은 어떠하다고 이루 측량할 수 없을 뿐더러, 우리가 여기서 보지 못하는 것인즉 말할 것 없거니와, 서울과 각 항구에 외국인의 거류지안을 볼지라도, 이는 몇 만 리에 재물을 수운(輸運)해다가 객지에 초초히 사는 것이로되, 황홀 찬란함이 가히 유리세계(瑠璃世界)라. 의복 음식은 위생에 극히 정긴하고, 기용집물(器容什物)은 수족에 제일 편리하여, 완호기물은 사람의 이목을 가깝게 하는 중, 정치를 밝히 하며, 나라가 태평부강하고, 학문을 힘써 배워 백성이 문명하니, 나라를 생각하니 환란위급의 걱정이 없고, 처자를 돌아보니 기한 곤궁의 근심이 없어, 나아가니 마음이 활달하고, 들어옴에 살림이 재미있은즉, 자연 주름이 펴이고 기운이 활발하여 자유권(自由權)과 명예(名譽)가 중한 줄도 알고, 사랑과 정의가 생기어 사람이 귀하고 물건이 천한 줄을 자연히 깨닫는 중, 겸하여 고루거각과 교의침상(交椅寢牀)에 한가로이 처하여, 토민(土民)을 대하여 보니 업신여김과 교만한 생각이 아니 날 수 없고, 죽게 된 백성들이 사람들에게 등을 대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니, 백성이 이같이 천하므로 그 나라 정부의 대신은 백성보다는 좀 높이 대접하려니와, 백성 지체에 딸리어 그 높음이 얼마 못 되는지라.

슬프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을 보니 상등으로 말하여도 기와집 오량각(五樑閣)과 면주 옷 고기반찬에 지나지 못하는 상등 살림도 몇이 못 되고, 경향을 통계하여 말하게 되면 초가집 움막살이, 새는 지붕, 자빠진 벽에 풍우를 못 가리고, 칠성(七星) 무명(*국산 무명)과 외국 무명을 비단 같이 귀히 여겨, 더러운 살을 겨우 가리면 그만 풍족히 여겨 하는 말이, 세상에 우리 복색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여, 쌀 한 그릇에 소금 장 한 두 가지면 셈평(*생활의 형편)이 아주 펴여 세상에 밥 같이 좋은 음식은 없다고들 하는 처지들에, 그것도 얻지 못하여 피 좁쌀, 겉 곡식에 보리 감자 같은 것으로 일생을 지내가므로, 늙은이와 어린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방황하며 홉살 푼돈을 빌어다가 연명하니 주린 빛 추운 소리를 차마 어찌 듣고 보리오.

이 지경에 이른 백성들이 어느 겨를에 염치, 체면, 인정, 도리를 돌아보리오. 세상이 귀하지 않은즉 귀한 것이 조금도 없고, 남의 고대 광실 완호기물이 좋아 보이지 않고, 다만 경영하는 것이 돈량, 쌀되에 지나지 못하니, 과연 애 닳도다. 이것이 뉘 탓인고, 나 잘못한 탓이로다.

대개 부강한 나라에는 당초에 재물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땅에서 솟은 것이 아니라, 나랏일과 사사업(私事業)에 어찌하면 부강하고 어찌하면 편리하고, 밤낮으로 일을 하여 저같이 크게 되었으되, 오히려 부족하여 더욱 진보함을 열심으로 구하기에, 날로 문명하여 더 무슨 지경에 이를는지 알 수 없거니와,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한문에 젖어서 죽 술 연명이라도 하루 이틀 지날 수만 있으면 마음에 풍족하여 사지를 게을리 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므로, 나중에는 언짢고 좋은 것을 분별할 수 없이 되니, 이것은 과연 불이 뜨겁고 어름이 찬 것을 모름과 같도다.

종시 수족을 놀리고 구차히 평안함을 구하다가는 나라 일은 고사하고 주리고 얼어서 죽음을 어찌 면하기를 바라리오. 남의 사람은 한 때에 십여 원어치 음식을 먹고, 옷 한 벌에 천여 원짜리를 입는 이가 있으니, 우리에게 비교하면 몇 갑절의 층등(層等)이 된다 하리오. 부(富)하면 귀하고, 가난하면 천한 것은 자연한 이치라. 복식은 비록 양복이나 누가 감히 괄시하며, 내 의복이 아무리 좋다 하나 남 알기는 가소롭고 지천(至賤)이니 어찌 개탄치 않으리오.

우리도 언제나 재물 모아 남에게 대접 받고 귀염 받을는지. 세월은 무정하여 나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화살 같이 달아나고, 시절은 절기 찾아 농사 일이 늦었는데, 게으른 저 농부들 어제 저녁 곤히 든 잠 일고삼장(日高三丈: 아침 해가 높이 떴음) 남창에 해가 들어서 창에 기우도록 문을 닫고 누웠으니 그 아니 답답한가. 이제라도 홀연히 정신 차려 어서어서 급하면.

(다음 호는 11월20일 제98호)

<편집자 주>

비봉출판사 박기봉 대표는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1970년 서울상대 경제학과 졸업 후 1980년에 비봉출판사를 설립했다. 1994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를 역임했으며, 1966년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맹자(孟子), 충무공 이순신(4권),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신채호), 삼국연의(8권), 독립정신(이승만), 우남 이승만 한시집(漢詩集, 일명 체역집(替役集) 등이 있다.

박기봉 대표의 열열한 협조 덕분에 독자들에게 당시 시대상과 함께 젊은 이승만의 사고(思考)와 사상(思想)을 엿볼 수 있게 하여 큰 감사의 인사를 지면으로 다시한번 드린다.

연재 중 어느 독자는 “이렇게 훌륭한 글들을 우리가 배운 교과서에 단 한 점도 실리지 않았다는 것은 국어학자들의 기만(欺瞞)이고 역사학자들의 배임(背任)이다”라고 했다.

이승만의 ‘독립정신’과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이 대한민국 교과서에 실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제2권을 연재한다.

이번 연재는 지난 1권처럼 당시 보도된 날짜가 아닌 월(月). 수(水), 금(金)요일 순으로 하여 1주일 3번 전재(全載) 한다.

사진=더프리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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