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화학상 수상자 기타가와 교수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기타가와 스스무 교토대 특별교수가 8일 교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웃으며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인 학자가 8일 노벨생리의학상에 이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잇달아 선정되자 일본 사회는 또다시 환호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수상으로 일본은 올해 과학 분야에서만 노벨상 2관왕에 오르며 기초과학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일본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는 이날 노벨화학상 수상자 3명 중 1명이 기타가와 스스무(74) 교토대학교 특별교수라고 속보로 전하면서 "기쁜 소식"이라고 강조했다.

NHK는 지난해 원폭 피해자 단체인 '니혼히단쿄'(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지난 6일에는 사카구치 시몬(74) 오사카대학교 특임교수가 생리의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고 소개했다.

이 매체는 일본 학자가 노벨화학상을 받은 것은 지난 2019년 화학기업 아사히카세이의 요시노 아키라 박사 이후 6년 만이자 통틀어 9명째라고 덧붙였다.

이번 노벨화학상은 ‘금속-유기 골격체(MOF, Metal-Organic Frameworks)’라는 새로운 분자 구조를 만든 기타가와 스스무 일본 교토대학교 교수, 리처드 롭슨(88) 호주 멜버른대학교(University of Melbourne) 교수, 오마르 엠. 야기(60)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교수를 포함한 과학자 3인에게 돌아갔다.

금속-유기 골격체(MOF)는 금속 이온을 유기 분자로 연결해 만든 골격 구조로, 내부에 수많은 미세한 구멍을 통해 다른 분자들이 드나들거나 흡착될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

에이피(AP, Associated Press) 통신은 전문가들이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해리 포터' 시리즈 속 주인공 헤르미온느의 가방에 비유하며, 겉보기에는 작지만 내부 공간이 무한대에 가까워 이산화탄소(CO2) 포집, 공기 중 수분 채취, 수소 연료 저장 등 인류의 주요 난제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하이너 링케 노벨화학위원회 위원장은 "금속-유기 골격체(MOF)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기능을 지닌 맞춤형 물질을 만들 수 있는, 예전에는 예견하지 못했던 기회들을 마련해줬다"고 설명했다.

올로프 람스트룀 노벨화학위원회 위원도 "매우 작은 부피에 엄청난 양의 가스를 저장할 수 있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벨위원회는 리처드 롭슨 교수가 1989년 구리 양이온을 중심으로 최초의 금속-유기 골격체(MOF) 구조를 만들었으나 불안정했고, 이후 기타가와 교수가 기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유연한 금속-유기 골격체(MOF) 구조를, 야기 교수는 튼튼하고 안정적인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전 세계 화학자들은 수만 종의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만들었고, 그중 일부는 탄소 포집, 물 부족 해결, 환경 정화 등 인류의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인다"고 덧붙였다.

일본 교도통신은 기타가와 교수가 연구실 근처에서 취재진과 만나 "감사하다. 굉장하다"는 소감을 밝혔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일본 주요 일간지는 사카구치 교수가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발표됐던 6일과 마찬가지로 기타가와 교수의 노벨화학상 수상 관련 기사를 홈페이지 가장 위쪽에 신속하게 배치했다.

요미우리와 아사히는 6일에 이어 이날 저녁에도 호외를 발행하며 경사를 전했다.

닛케이는 기타가와 교수에 대해 "탁월한 통찰력과 직감을 통해 위업을 이뤄냈다"고 평가했으며, 요미우리는 기타가와 교수가 사카구치 교수에 이어 쾌거를 이룩했다면서 '금속-유기 골격체(MOF)'가 "천연가스 저장과 온실가스 분리 등 여러 분야에서의 응용이 기대되는 점이 평가받았다"고 전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일본 학자가 연이어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된 데 대해 "독창적 발상에 의한 진리의 발견이 세계로부터 인정받아 자랑스럽다"며 "우리나라(일본) 연구력의 탁월함이 평가받은 것이 국민에게 용기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Yahoo Japan)의 노벨상 관련 기사에는 묵묵히 기초과학 연구를 이어온 사카구치 교수와 기타가와 교수에 대한 찬사를 담은 누리꾼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미국 대학에 진학하는 과학자가 많은데, 오사카대와 교토대에 남은 교수들이 노벨상을 받은 것이 대단하고 감사하다"고 적었으며, 오사카대와 교토대는 모두 간사이 지방의 명문 국립대학교다.

또 다른 누리꾼은 "기초과학은 국력의 기반이 되지만 경시돼 왔다. 그런데도 끈질기게 연구해 온 선생님들께 고개를 숙이게 된다"며 경의를 표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일본 정부가 노벨상 수상에 기뻐하는 데 그치지 말고 기초과학 연구비 등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사카구치 시몬 교수 역시 기타가와 교수의 수상 소식에 "나이가 비슷해 공감하는 면이 있다"며 "활발히 연구할 수 있는 젊은이를 어떻게 늘릴지 협력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에서 태어난 뒤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 4명을 포함하면 일본인 개인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이번이 30번째다.

노벨상 수상 단체는 니혼히단쿄(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 1곳이다.

외국 국적 취득자를 포함하여 한 해에 2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5번째 사례로, 이는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 수상자가 각 1명이었던 지난 2015년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 내역을 분야별로 보면 물리학상 12명, 화학상 9명, 생리의학상 6명, 문학상 2명이다.

평화상은 개인 1명, 단체 1곳이다. 경제학상 수상자는 아직 없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시대별 분포를 보면, 지난 2000년 이후 경제 고도성장 시기의 기초과학 투자가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으며 일본인 수상자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2000년에서 2002년까지 3년 연속 노벨화학상을 받았으며, 2002년에는 화학상과 물리학상 수상자를 동시에 배출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에는 외국 국적 취득자 1명을 포함해 일본 학자 4명이 동시에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수상 분야는 물리학상 3명, 화학상 1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