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크메르루주 대학살 50주년 추모 공연
지난 5월20일(현지시간) 캄보디아 쩡액에서 열린 크메르 루주 공산주의 정권의 대학살 50주년 추모 행사에서 학생 배우들이 크메르 루주의 학살 만행을 재연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최근 한국은 캄보디아 사태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다.

모국의 현재 비극은 과거에서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이 캄보디아 사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중 전쟁, 그리고 딥스테이트(Deep State)와의 전쟁의 큰 일환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리라고 필자는 본다.

◆ 필자의 캄보디아 순례, 세계의 어둠을 목도하다

필자는 올해 6월 초, 프놈펜의 뜨거운 바람 속으로 발을 들였다.

프놈펜 대학교 총장과의 회의라는 전공 관련 학문적 일정이었지만, 그 여정은 어느새 세계의 어둠을 목도하는 순례가 되었다.

덕분에 방문했던 앙코르와트의 돌벽은 침묵으로 역사를 말했고, 킬링필드의 바람은 아직도 이름 없는 영혼들의 울음을 품고 있었다.

그곳에서 필자는, '개발'이라는 단어가 가난의 붕대를 감은 채 꿈틀거리는 나라를 보았다.

순박한 눈동자를 가진 캄보디아인들, 그들의 미소 뒤에는 문명과 야만이 공존하는 깊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낡은 인력거 '셀카(Cyclo)'가 아직도 택시의 자리를 대신하고, 메콩강 건너편엔 다리조차 제대로 놓이지 못한 늪지의 삶이 있다.

그러나 그 척박한 땅에서도 인력거에는 큐알(QR, Quick Response) 코드가 붙어 있고, 모두 손에 낡은 중고라도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필자는 이 얼마나 기이한 문명의 역설인가 하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 킬링필드의 비극과 '악의 평범성'

프놈펜 시내의 한 고등학교—그곳은 폴 포트 정권이 학살의 도살장으로 바꿔놓은 현장이다.

그 교정의 벽에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고문의 핏자국이 남아 있고, 교실마다 이름 대신 숫자만 남은 영혼들의 그림자가 서성인다.

그리고 프놈펜 외곽의 3백 개 이상의 킬링필드 중 한 곳, 그곳의 '킬링나무' 앞에 섰을 때 필자는 세 아이의 엄마로 울음의 숨을 삼켰다.

나무에 붙은 어린아이들의 수많은 머리핀 같은 장신구와 천 조각이 바람에 흔들려 마치 억울한 영혼제를 지내는 무당의 옷자락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바로 옆의 작은 호수는 자식과 강제 이별된 후 노동으로 지쳐 죽은 여인들의 시체들이 수장되어 여전히 푸르다 못해 슬픈 색으로 빛났다.

그 나무 아래에서 필자는 들었다. 홍위병들이 단순히 폴 포트의 지시에 따라, 어린 자식들이 부모를 신고하고, 이웃이 이웃을 고발하던 그 끔찍한 시대의 속삭임을. 그 결과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자식의 손에, 친구의 손에, 체제의 이름으로 죽어갔다.

필자는 그날의 '악마의 실험'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킬링필드는 단지 캄보디아의 비극이 아니었다.

필자는 그것이 독일 히틀러 치하에서 죽어간 수많은 유대인 학살을 본 후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고 진단한다.

인간 내면의 어둠이 국가의 이름으로 얼마나 쉽게 인간성 상실로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거울이었다.

보건사회연구원


◆ 21세기 대한민국에 비치는 킬링필드의 그림자

그리고 필자는 지금, 그 거울의 반사가 21세기 필자의 모국 하늘 아래에서 다시 번쩍이는 것을 본다.

한국은 겉으로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번영의 도시지만, 그 내면에는 말 없는 감시와 고발의 문화가 자라나고 있다.

다른 생각을 하면 '적'이라 부르고, 다른 의견을 내면 '신고'와 '삭제'가 있다.

'숙청과 혁명'이 일어나고, 잭 스미스 같은 홍위병들이 미친듯이 날뛰고 있는 '집단 지성 마비'를 필자는 본다.

자식이 부모의 신념을 부정하고, 국민이 서로를 감시하며, 지역 갈등, 남녀 갈등, 종교 갈등까지 정권이 조장하며 '캔슬(Cancel)'이라는 이름의 킬링필드가 디지털 세상 속에 새로이 피어나고 있다.

그 피의 기억이 데이터의 언어로 옮겨와 다시 한 번 '침묵의 학살'을 벌이는 시대. 그것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이다.

부정선거 의혹으로 당선된 이재명 정권이 더욱 촉발하는 양극화는 단순한 정치적 대립이 아니라, 진실과 거짓의 전쟁이며, 인간의 양심을 시험하는 심판의 서막이라고 필자는 강조한다.

필자는 프놈펜에서 느꼈던 그 '악의 기운'이 지금 서울의 공기 속에서도 같은 냄새로 번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모든 어둠은 결국 빛 앞에 드러난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선언한 '인신매매와 마약 카르텔에 맞선 세계적 전쟁'—그 일기의 한 줄기가 지금, 한국과 캄보디아를 잇는 거대한 심판의 물결로 이어지고 있다고 필자는 말한다.

이것은 단지 좌우 정치의 문제로 포장되어 있으나 실제 인류의 영혼이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진실과 거짓' 중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묻는 전쟁이다.

지난 20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전한길 선생님의 연설을 취재 나온 한 젊은 기자가 당당히 이재명 지지자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며, 필자는 누구를 지지하는 것은 자유이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사회 공산 전체주의 국가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필자는 다음 편에서, 이 '캄보디아의 그림자'가 어떻게 한국의 현실 속에서 재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왜 글로벌 세력과 합작한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악 소탕 작전의 구체적이고 국제적인 연결고리와 배후의 흐름인지를 밝혀보려 한다.

2025년 10월 20일 호주 시드니에서...

※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