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만난 중일 정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31일 경주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가 31일 한국에서 긴장된 분위기 속에 첫 만남을 가졌다.
약 1년 만에 일본 총리와 회담한 시 주석과 다카이치 신임 총리 간의 첫 정상회담은 30분이 채 안 돼 종료됐다.
양측은 역사 문제와 인권 등 민감한 현안을 서로 거론하며 팽팽한 기싸움을 벌인 것으로 분석된다.
◆ 긴장 속에 시작된 '상견례'... 시 주석 무표정 대 다카이치 총리 미소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China Central Television)과 엔에이치케이(NHK, Nippon Hoso Kyokai)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정상회의 참석차 경주에 머무르고 있는 두 정상은 이날 오후 정상회의장 인근의 한 회담장에서 악수로 만남을 시작했다.
짙은 남색 양복 차림에 보랏빛 타이를 맨 시진핑(Xi Jinping) 주석이 먼저 나와 다카이치 총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파란색 재킷 차림의 다카이치 사나에(Sanae Takaichi) 총리가 등장하자 시진핑 주석은 중국어 인사 "안녕하세요(下午好, 시아우하오)"라고 말하며 악수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시진핑 주석을 향해 인사말을 건넨 뒤 두 정상은 양국 국기를 배경으로 악수한 채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카메라가 클로즈업하자 잠깐 활짝 웃어 보였으나, 시진핑 주석은 거의 무표정으로 일관해 중국이 표정으로 외교적 메시지를 발신한다는 분석에 힘을 실었다.
이후 양국 정상이 회담장 좌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시진핑 주석이 다카이치 총리에게 손을 내밀어 방향을 안내하기도 했다.
첫 회담하는 시진핑·다카이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31일 경주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다카이치 총리의 민감 현안 제기… 시진핑 주석의 '역사 반성' 경고
회담 모두발언에서 시진핑 주석은 "오늘 다카이치 총리와 처음 만났다"면서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후 중국이 일본의 중요한 인접국이며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언급했다.
이는 지난 21일 취임한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직접적인 축하 인사는 아니었으며, 중국은 앞서 시진핑 주석이 아닌 리창(Li Qiang) 국무원 총리 명의로 축전을 보낸 바 있다.
시진핑 주석은 다카이치 총리와 새 내각이 중일 관계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말로 회담의 포문을 열면서 다카이치 총리와 소통을 유지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모두발언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양국 간에는 현안과 과제도 있다"고 말하며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난관들을 거론할 것을 예고했다.
회담 직후 다카이치 총리는 취재진에게 양국 간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 동중국해 문제, 희토류 수출 관리 문제, 중국에 체류하는 일본인의 안정성 확보 요구, 홍콩이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상황 등에 대한 우려 등 다양하고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시진핑 주석 측에 전했다고 밝혔다.
이는 취임 열흘이 막 넘은 신임 총리로서 '반중 성향'이라는 평가를 의식한 듯한 패기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북한에 의한 납치 문제를 포함한 북한 정세에 대해서도 시진핑 주석과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이에 시진핑 주석은 일본의 침략 역사를 반성하고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 정신을 발양해야 한다면서 다카이치 총리가 이끄는 내각을 향한 경고성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주석은 양국이 서로에게 위협이 돼서는 안 되며 새 내각이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세워야 한다고도 말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은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한 듯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거론하며, 역사와 대만 등 중대한 원칙 문제에 대한 '4대 정치문건'의 명확한 규정을 준수하고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문건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주권·영토 완전성 상호 존중, 패권 추구 반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중국이 대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일본에 자주 꺼내는 카드다.
과거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Wall Street Journal)은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자치를 지지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경주에서 만난 중일 정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31일 경주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불편한 기싸움 속에 짧게 마무리된 회담… 불투명한 만남 장소와 언론 보도
양국 정상은 교류와 소통을 확대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에 공감하면서도, 사실상 이번 만남은 양국이 서로에 대해 가진 입장 차이를 다시금 확인한 불편한 자리가 된 셈이다.
이날 회담은 약 30분 만에 종료됐는데, 2024년 시진핑 주석이 이시바 시게루(Shigeru Ishiba) 당시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을 때는 35분간, 2023년 시진핑 주석과 기시다 후미오(Fumio Kishida) 당시 총리는 65분간 회담을 가졌다. 이는 이번 회담이 과거보다 짧게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회담 장소는 시진핑 주석의 숙소인 코오롱호텔인 것으로 전해졌으나, 양국 모두 관련된 공식 발표를 하지는 않았다.
회담은 NHK를 통해 중계됐고, 중국 관영 매체는 관련 소식을 보도하는 데 그쳤다.
시진핑 주석은 31일 저녁 정상 만찬에 참석하며 남은 일정을 소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