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하는 정현호 부회장과 노태문 사장
삼성전자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과 삼성전자 노태문 MX 사업부장(사장)이 지난해 10월11일 오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로 귀국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의 '2인자'이자 '구원투수'로 불리던 정현호 부회장이 7일 전격적으로 사퇴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뉴삼성'을 위한 그룹 수뇌부의 전면 쇄신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정 부회장의 용퇴는 전날까지 사내에 공유되지 않은 채 이재용 회장에게 사퇴 의사를 전한 후, 이날 오전 회의에서 외부에 밝힐 준비를 지시하며 진행되었다.
그는 곧바로 집무실을 후임자인 박학규 사장에게 내주고 퇴임 프로그램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 부회장은 2017년 해체된 미래전략실(미전실) 대신 신설된 사업지원티에프(TF, Task Force)를 이끌면서 이재용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해왔다.
이재용 회장이 2017년에서 2018년, 그리고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약 1년 6개월 동안 수감된 기간 동안에는 그룹 주요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사업지원티에프는 과도한 권한 집중과 불투명한 의사 결정으로 비판을 받으며, 미전실이 사실상 부활한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선을 받기도 했다.
특히 2023년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진으로 실적이 급락했을 당시에는 정 부회장이 재무통으로서 경영 관리에만 집중하고 기술 경쟁력을 등한시한 것 아니냐는 책임론까지 제기된 바 있다.
정 부회장의 용퇴는 삼성전자 사업이 뚜렷한 반등세를 보이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에 매출 86조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분기 기록을 경신했고, 지난해 한때 4만원대까지 하락했던 주가도 최근 10만원을 넘어 연일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또한 이재용 회장도 지난 7월 대법원 무죄 판결을 전후하여 반도체 및 신성장 사업에서 굵직한 성과를 연이어 거두며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재용 회장,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참석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0월29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최고경영자(CEO) 서밋(Summit)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재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11월 말이나 12월 초로 예상되는 사장단 정기 인사를 앞두고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겠다는 의지와, 안정세로 접어든 삼성전자 내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번 용퇴를 결정한 것으로 분석한다.
이번 결단은 이재용 회장이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 선보일 '뉴삼성' 비전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2017년 미전실 해체가 대규모 인사 쇄신의 시발점이 되었듯, 미전실 이후 꾸려진 사업지원티에프의 사업지원실로의 재편이 8년 만에 또 다른 인사 태풍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17년 10월 미전실 사장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하며 사장단을 교체했고, 이듬해인 2018년 2월에는 60세 이상 사장급 인사들이 줄사표를 내며 사장과 부사장 등 임원급을 대거 교체하는 대대적인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이날 조직 개편과 인사는 사업지원티에프에 제한되었지만, 사업지원티에프와 정 부회장의 그룹 내 위상을 고려할 때 향후 사장단 인사에 미칠 영향은 그 어느 때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 부회장이 후진 양성을 위해 길을 터준 취지를 볼 때, 핵심 경영진의 추가적인 용퇴가 뒤따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해온 정 부회장의 용퇴로 인해 경영진의 새 판을 짤 명분이 생겼다"며 "제2의 도약을 노리는 삼성전자가 전면적 쇄신에 나설 가능성도 한층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의 부진을 벗어나 본격적인 재도약을 노리는 삼성전자에서 이재용 회장이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쇄신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