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새해를 앞두고 가계대출 완화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자 금융당국은 연초에도 강력한 관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경고 메시지를 내놨다.
매년 반복되어 온 연초 대출 급증과 연말 '대출 셧다운(Shutdown)'의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조만간 은행권을 소집하여 공격적인 대출 영업 자제를 주문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달 13일께 가계부채 점검 회의를 개최하고 연초 가계대출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날 "연초 가계대출이 급증하지 않도록 배분을 잘해달라는 메시지가 필요할 것"이라며, "1월에도 현재의 관리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월별 및 분기별 관리를 통해 대출 총량을 억제해 왔으나, 새해에는 월별 관리 체계에 더욱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새해를 맞아 은행권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 압박에서 벗어나 대출 문턱을 급격히 낮출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연초 총량 목표치 리셋(Reset)을 계기로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렸다가 목표치를 크게 초과하고, 연말에는 한도 관리를 이유로 대출 창구를 사실상 닫아버리는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실수요자들은 매년 연말 낮은 한도와 높은 금리의 '대출 한파'를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주요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1월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생활 안정자금 대출 한도를 늘리거나 폐지하고, 대출 모집인을 통한 대출을 다시 취급하는 등 연말에 적용했던 가계대출 규제를 줄줄이 완화했다.
올해도 은행권은 대출 모집인을 통한 신규 주담대 접수를 다시 받는 등 가계대출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었으나, 금융당국이 압박에 나선 만큼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 모집인을 통한 주담대를 너무 오랫동안 제한해 연초에는 물량을 일부 풀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다만 당국이 연초부터 관리 기조를 강하게 가져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월별 한도를 자체적으로 설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내년 2월 확정되는 새로운 대출 목표 한도에서 올해 목표치 초과분만큼을 깎는 '페널티(Penalty)'도 적용할 방침이다.
현재 은행권에서는 케이비국민은행(KB Kookmin Bank)과 카카오뱅크, 광주은행 등 여러 곳이 올해 목표치를 초과하여 가계대출을 취급한 상태다.
케이비국민은행은 목표 대비 가계대출 실적이 현재 125퍼센트(%)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도 목표 대비 가계대출 실적이 100퍼센트(%)를 조금 넘는 상황이지만, 연말 상환분 등을 고려하면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금융권에서는 새마을금고가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가계대출 잔액을 4조6천억 원가량 늘리며 목표치를 크게 넘어선 상태다.
목표치를 넘긴 금융회사들에는 '불이익'이 있어야 목표치를 준수한 곳들과 차별화가 되기 때문에 올해도 페널티 부과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 주택구입 가계대출 중단
KB국민은행은 지난 24일부터 대면 창구에서 올해 실행 예정인 주택 구입 자금용 주택담보대출 신규 접수를 제한한다. 사진은 이날 KB국민은행 서울 여의도 영업부 대면 창구 모습.사진=연합뉴스
다만, 케이비국민은행과 새마을금고, 카카오뱅크 등 대형 금융회사들이 목표치를 초과한 만큼 페널티 적용으로 내년에도 대출 시장 '한파'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도는 줄어들고 대출 금리는 오르면서 실수요자들의 대출 여건이 새해에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이자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금리가 연 2퍼센트(%)대에 불과했던 2020년 혼합형 주담대로 대출을 받았던 사람들이 5년간의 고정 금리 적용 기간을 마치고 변동 금리로 전환되면서 연 4~5퍼센트(%)대의 금리를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하여 "내년에도 가계부채 총량 관리 측면에서 지금의 기조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계부채 총량 증가율을 경상 성장률과 맞춰 관리하게 되는데, 지금은 (가계부채) 절대 수준이 워낙 높기 때문에 총량 증가율을 경상 성장률보다 낮게 설정하여 연착륙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