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피격사건'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결심공판 출석
2020년 9월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왼쪽부터),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1월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법원이 고(故) 이대준 씨에 대한 '월북 판단'을 단순 의견 표명으로 규정하자, 유족 측은 즉각 상급심 판단을 촉구했다.

반면, 여권 인사들은 검찰의 기소가 '조작'이라고 비난하며 항소 포기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서면서, 검찰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31일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대장동 사건' 당시의 정치적 논란을 되풀이할지 주목하고 있다.

◆ 1심 법원, '월북 판단'은 의견 표명…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무죄 선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으로 기소된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주요 인사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정부 당국의 "월북이라고 판단된다"는 표현을 두고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고, 가치 평가 내지 의견 표현에 불과해 허위 여부를 따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사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위해 명확한 근거 없이 이대준 씨를 '월북자'로 몰아갔다고 주장해왔다.

당시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있어 월북 여부 판단이 어려웠음에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한 것이 허위라는 검찰의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앞서 해양수산부 소속 서해어업관리공무원이었던 이대준 씨는 지난 2020년 9월 21일 소연평도 남방 해역에서 실종되었다.

이튿날 북한 선박에 의해 발견된 이씨는 구조 없이 장시간 표류하다 북측 해역에서 피살된 후 소각되었다.

해양경찰청은 9월 24일 1차 수사 결과에서 "이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으며, 닷새 뒤 2차 결과에서는 표류 예측 분석 등을 제시하며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이후 추가 수사를 통해 10월 22일에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최종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법정 나서는 이래진 씨
2020년 9월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유가족 이래진 씨가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장관 등에 대한 1심 선고공판 뒤 법정을 나서며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조작 기소' 與 압박 속 유족 측 "상급심 판단 받아야"

법원의 이번 판단을 놓고 법조계에서는 "해경이 공식 브리핑을 통해 여러 차례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것을 단순한 가치 평가 또는 의견 표현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의 국민과 언론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였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대준 씨의 유족 측 변호를 맡은 김기윤 변호사는 "해경 수사결과 발표를 '의견 제시'로 본 법원의 판단은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며 "상급심에서 이에 대한 판단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는 1심 무죄 선고 이후 이번 기소를 "조작 기소"로 규정하며 검찰에 사실상 항소 포기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여권의 강력한 압박은 검찰의 항소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은 만약 당시 정부가 정보 제한으로 월북 여부 판단이 어려웠다면 "월북인지 알기 어렵다"고 발표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공식적이고 통일된 판단을 내리고 이를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며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평도 실종 공무원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서해 공무원 피살(피격 사건)'을 감사해 온 감사원이 지난 2023년 12월7일 해경 고위간부에 대한 정직 등 관련 부처 관계자 13명에 대해 징계·주의 등을 요구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인 이대준 씨가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된 후 북한군에게 피살되고 시신이 해상에서 소각된 사건이다. 사진은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 실종됐다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사진=연합뉴스


◆ 검찰, 항소 기로… '정치적 판단' 논란 재연 우려

검찰은 현재 판결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며 항소 제기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항소 기한은 내달 2일까지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총리가 1심 무죄 선고 이후 공개적으로 항소 포기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검찰이 실제 항소를 제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대장동 사건' 당시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해 검찰의 항소 포기를 결정하여 '정치적 판단' 논란에 휩싸였던 전례를 되풀이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재판부는 또한 "국가안보, 남북관계와 관련한 고도의 판단이나 행정행위를 사후의 형사사법적 잣대로 판단하려 할 경우 자칫 큰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며, 책임자들이 "사후의 책임을 피하고자 주저하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정부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오류나 거짓이 없어야 하며, 특히 이 사건은 이씨에게 '월북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씌워지는 사안이었던 만큼 더욱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변호사는 "100%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궁금해한다는 이유로 특정 결론을 내놓는 것이 오히려 사회에 더 큰 무형적 피해를 야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