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정치인, 기생(寄生)지식인, 선동언론이 홍위병 만들어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힌 사람은 팻말을 목에 걸고 이 거리 저 거리 끌려다니며 조리돌림을 당해야 했다. (글. 사진=월간조선 캡처)
과거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일어났을 때 홍위병들은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문화혁명은 중국인들의 머릿속 깊이 박혀있던 유교 사상과 보수주의를 뿌리 뽑으려는 인간개조 실험이었지요. 홍위병들은 어린 중고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신격화된 모택동의 혁명 이데올로기에 따라 같은 반 친구들은 물론이고 존경하던 선생까지도 죽였습니다. 여선생은 윤간했고, 급우의 부모들까지 수정주의자, 부르주아라는 누명을 씌어 죽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단지 서양 옷을 즐겨 입거나, 양주나 포도주를 즐겨 마시거나, 서양음악을 들었다는 이유였습니다.
김일성을 수정주의자라고 비난했으며 나중에는 모택동이 부농의 아들이라고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젊은이는 농촌에서 배워야 한다.”는 구호 아래 농촌으로 보내져 시골 농부로 평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토사구팽을 당한 것입니다. 농촌으로 간 소녀 홍위병들은 더욱 비참했습니다. 성폭력과 윤간의 대상이 되었고 강제로 강간범과 결혼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홍위병들이 죽인 사람들은 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집단 광기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혼자였다면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잔혹한 짓을 집단에 속하게 되면 얼마든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인터넷 캡처
놀랍게도 한국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인이나 적으로 취급당합니다. 한 사람의 인격, 성품, 학식, 도덕성, 연륜과 철학이 마스크 하나로 무시됩니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3세 유아에게 마스크를 강제하는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들이 있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는 마스크를 벗으면 탈 수도 없고, 신고당하며, 강제로 하차를 당합니다. 버스 기사, 역무원, 보안요원이 방해받지 않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승객의 권리를 빼앗습니다.
모택동이 중국을 거대한 인간개조 실험장으로 만든 것처럼, 한국이 장기적으로 마스크 착용을 강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거대한 실험장이 된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실험용 쥐가 되어 관찰 대상이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마스크가 백해무익함은 상식입니다. 이것은 코로나 판데믹이 끝나고 감기처럼 풍토병이 된 것과 같은 상식입니다. 따라서 마스크 벗는 것은 상식적인 행동입니다. 그럼에도 왜 당국이 마스크를 강제하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죄 없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을 권한은 아무에게도 없다는 것입니다. 판단력을 갖춘 성인에게서 선택할 자유를 빼앗고 강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바이러스는 장소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어떤 인간이 이곳은 되고 저곳은 안 된다고 결정하는 것은 방역이 아니라 독단이고 독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순영 칼럼리스트 / 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