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흑해에서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으로 알려진 유조선이 우크라이나 드론의 공격을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서방 제재를 받는 국가들이 자국산 원유 등을 몰래 운송하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이 최근 폭발적으로 늘며 국제사회의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림자 선단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제재를 피하기 위해 국제 해상보험을 이용하지 않는 유조선 100척 규모로 시작됐다.

러시아는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등의 제재를 회피하고자 중고 유조선을 대거 매입해 중국, 인도 등으로 원유를 저가 수출했다.

이들 선단은 소유관계를 모호하게 하고 깃발 등에서 제재 대상국과의 연관성을 숨기는 특징을 보였다.

현재 그림자 선단 규모는 러시아뿐 아니라 이란과 베네수엘라까지 확대돼 수백 척에 달한다.

최근에는 러시아 국기를 내걸고 운용되는 등 대담해졌으며, 이에 대한 서방 대응도 나포, 공습 등으로 더욱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은 20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연안에서 유조선 1척을 나포하고 “베네수엘라 그림자 선단의 일부로, 도난 석유를 밀매하며 마약 테러리스트인 마두로 정권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위장 국적을 사용하는 선박”이라고 밝혔다.

10일에도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실은 ‘스키퍼’호를 나포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은 18일 이란 그림자 선단 29척을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EU는 15일 그림자 선단 조력자 9명을 포함한 개인 17명과 법인 6곳을 추가 제재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지중해와 흑해에서 러시아 그림자 선단 유조선 4척을 드론으로 공격한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2일 프랑스 생나제르 앞바아에서 러시아 그림자 선단으로 의심되는 유조선 보라카이 호에 프랑스군인들이 서 있다.사진=연합뉴스

프랑스는 지난 10월 서부 생나제르 앞바다에서 베냉 선적 ‘보라카이’호에 군을 승선시켜 조사했다.

이러한 제재 강화에 러시아는 직접 반발하기도 했다.

5월 에스토니아 군함과 항공기가 자국 영해에 진입한 유조선 ‘재규어’에 접근하자 러시아 수호이(Su)-35 전투기가 출동해 에스토니아 영공에 무단 진입했다.

유럽정책센터(EPC, European Policy Centre) 선임 연구원 크리스 크레미다스-코트니는 “러시아와 연계된 선박들이 드론 침투, 해저 케이블 훼손, 핵심 인프라 정찰에 연루됐다”며 “러시아가 그림자 선단을 전략 자산으로 보고 보호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싱크탱크 로열 유나이티드 서비스 인스티튜트(RUSI, Royal United Services Institute) 재정안보센터 곤잘로 사이즈 에라우스킨 연구원은 “그림자 선단은 2022년 이후 급격히 늘어 현재 900~1천200척 규모로 운영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낡은 선박, 소유관계 불분명한 유조선, 불법 활동 연루 회사 소유 선박 등이 섞여 있으며, 가짜 선적 등록 사이트와 불법 중개인 증가가 운용을 가능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해운 전문지 로이즈 리스트의 토머 라난은 “제재 대상국 원유는 할인 판매되고, 선주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더 많은 수익을 얻는다”며 “경제적 유인이 있는 한 그림자 선단 운영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