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문시장서 인사하는 김문수 후보
지난 5월12일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훌륭한 팔로워가 훌륭한 리더가 된다.”
A good follower can be a good leader.
필자는 정치에서 ‘배신’이라는 낙인을 쉽게 찍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와 인간사에서 신뢰의 균열은 일상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더가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한 채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 선택이 조직의 단합과 운영을 근본적으로 붕괴시킬 때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마지막 순간 은혜를 입은 대상에게 가하는 배신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조직 전체를 파괴하는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필자는 김문수 전 장관이 최소 세 차례 조직적·의도적·윤리적으로 국민과 당, 보수를 배신했다고 본다.
▲ 첫 번째 배신: 대선 직후 침묵
대선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기적처럼 김문수를 밀었으나 결과는 패배였다.
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중대한 부정선거 문제들에 대해 뜻있는 국민들과 함께 문제 제기를 설득받았음에도 그는 끝내 침묵했다.
당사자가 침묵하니 지지자들 역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이는 리더로서 책임을 회피한 첫 번째 배신이었다.
▲ 두 번째 배신: 당대표 선거에서의 판단 착오
대통령 후보였던 김문수가 당대표가 될 것이라 예상한 당원은 많았다.
그러나 그는 막판에 이준석·한동훈 세력을 함께 끌고 가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고 이에 분노한 당원들은 결국 다른 선택을 했다.
당심을 오판한 결정이었다.
▲ 세 번째 배신: 한동훈계 옹호 발언
최근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동훈계 인사에 대해 당 규정에 따른 징계를 내렸음에도 김문수는 “한동훈은 당의 보배이니 품고 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는 계엄 전후로 극심한 분열을 겪는 당의 현실을 외면한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 기자회견 하는 한동훈 전 대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앞 쪽문에서 12ㆍ3 비상계엄 1주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한동훈계 옹호 발언의 문제점
필자를 포함한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실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시간적 부적합성이다.지금은 편 가르기가 아니라 조직 수습과 단합이 우선인 시점이다.더욱이 윤석열 대통령의 생신이라는 상징적 날짜에 나온 발언은 불필요한 갈등만 증폭시켰다.
▶둘째 리더십의 기본을 저버렸다.지도자의 덕목은 때로 개인적 신념보다 조직의 결정을 존중하는 데 있다.“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처럼 팔로워가 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다.
▶셋째 이번 징계는 보복이 아니라 규칙의 문제다.한동훈은 당 게시판 사건에서 대통령 부부에 대한 인격 모독, 명예훼손, 조직적 여론조작 의혹을 받고 있다.누구든 당 규칙을 어기면 조사와 징계를 받는 것이 민주적 정당의 기본 질서다.
▶넷째 윤석열 대통령 부부에게 결정적 상처를 줬다.이미 배신이 널리 알려진 인물을 ‘보배’라 치켜세우는 것은 정치적 판단 이전에 인간적 도리를 저버린 행위다.윤 대통령은 김문수를 장관으로 기용하며 정치적 생명을 연장시켜 주지 않았는가.
▶다섯째 국제 정세와 계엄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한동훈·이준석계 등은 국내 정치에만 매몰돼 세계적 흐름을 읽지 못한다.부정선거 문제, 주권 침탈, 글로벌 보수화 흐름과 세대 교체의 거대한 변곡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무엇보다 이들의 공통점은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다.
필자는 과거 김문수를 드물게 청렴한 정치인으로 높이 평가한 적이 있다.
“그 평가에는 변함이 없다.
과거의 김문수는 훌륭했다.
그러나 지금의 김문수는 다르다.
정치적 감각과 인식이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바둑에 “모르면 손을 떼라”는 말이 있다.
지금 김문수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발언으로 보수 국민과 윤석열 대통령 당에 깊은 상처와 분열을 더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침묵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윤석열 복귀를 맨 앞장서서 준비할 거라 기대한 우리 선량한 국민들의 분노를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적어도 가룟 유다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배신처럼 기억되지 않길 바래본다.
2025년 12월 18일
호주시드니에서
※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