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나서는 이래진 씨
2020년 9월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유가족 이래진 씨가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장관 등에 대한 1심 선고공판 뒤 법정을 나서며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검찰은 '서해 공무원 피격 은폐 의혹' 사건의 피고인 전원 무죄 판결에 대한 항소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숨진 고 이대준 씨의 유가족은 오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내용의 서신을 전달할 예정이다.

◆ 유가족, 트럼프 美 대통령에 서신 전달… "이재명 정부 진실 왜곡" 비판

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 씨는 2일 주한 미국대사관 관계자를 만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낼 서신을 전달할 계획이다.

이날은 항소 마지막 날이기도 하여, 이 씨는 국회에서 검찰의 항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뒤 서신을 미국대사관에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족 측이 작성한 서신에는 주요 피고인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가운데, 항소 포기 등을 통한 현 이재명 정부의 진실 왜곡 시도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족 측은 서신을 통해 2020년 9월 22일 서해에서 발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이 "정권의 성향에 따라 동일한 사실이 월북이었다가 아니었다가 다시 월북으로 뒤집히는 시도의 대상이 돼 왔다"고 주장했다.

또한 "당시 정부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를 자진 월북자로 낙인찍었고, 해양경찰과 국방부의 수사·발표 과정에서 조작과 왜곡이 있었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고 지적했다.

유족 측은 최근 주요 피고인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이 기소한 검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김민석 국무총리가 항소를 포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발언을 하는 등, 책임 규명이 아닌 피고인을 보호하고 기소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족 측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 침해 사안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것처럼, 현 이재명 정부 하에서 유족에게 가해지고 있는 인권 침해 시도와 진실 왜곡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고공판 출석하는 서훈·박지원·서욱
2020년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1심 피고인 전원 무죄 판결과 검찰의 딜레마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달 26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노은채 전 국가정보원장 비서실장 등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피격과 소각 사실을 은폐하거나 월북으로 몰아가려 한 혐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실종 보고, 전파, 분석 및 상황판단, 수사 진행 및 결과 발표 등의 절차적·내용적 측면에서 위법이 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항소 기한인 3일 0시가 임박하면서 검찰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통상 피고인 전원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각에서는 수사와 공소 유지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지휘부와 수사팀 사이에 항소 필요성을 두고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실제 수사팀은 박철우 중앙지검장에게 항소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박 지검장이 '판결문의 무죄 이유 등에 대한 분석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시와 함께 보고서를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사태로 검찰 내부 반발이 표면화되며 검찰총장 대행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른 검찰로서는 다시 한번 시험대에 선 상황이다.

연평도 실종 공무원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서해 공무원 피살(피격 사건)'을 감사해 온 감사원이 지난 2023년 12월7일 해경 고위간부에 대한 정직 등 관련 부처 관계자 13명에 대해 징계·주의 등을 요구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인 이대준 씨가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된 후 북한군에게 피살되고 시신이 해상에서 소각된 사건이다. 사진은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 실종됐다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사진=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검찰의 항소에 공개적 부정적 입장 표명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는 '서해 공무원 피격 은폐 의혹' 사건의 검찰 항소 여부에 대해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없는 사건을 만들고 있는 증거를 숨겨 사람을 감옥 보내는 게 말이 되느냐"며 "여기에 대해 책임을 묻든지 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검찰을 질타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감찰권 남용이나 무리한 법리 적용, 사실상의 조작 기소로 볼 수 있는 정도의 국정원과 검찰의 잘못이 이뤄졌고 인정된 시점"이라며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항소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라고 발언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당시 담당 검사들이 제대로 수사해 기소했는지 감찰할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어떤 형태로든 과거 검찰의 권력 오남용 결과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답하며, 검찰의 잘못된 기소에 따른 법원의 무죄 판단인 만큼 항소 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직접 검찰의 항소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면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여 항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