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캡처


3) 즐거움의 본질

게이들의 일평생 평균 섹스 파트너 수는 적게는 50명에서 최대 1천명에 달하고, 에이즈에 감염된 게이는 1년에 60명의 파트너와 관계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동성혼이 합법화된 나라(스웨덴, 네덜란드)에서도 결혼을 신고한 커플은 1~3%에 지나지 않는다. 대체로 전형적인 동성 커플의 동거 기간은 평균 6개월에서 1.5년이며, 2년 이상인 경우는 매우 드물며, 남자동성애자들 중 1년 이상 한 사람만을 파트너로 하여 생활하는 monogamy는 전체의 25%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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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들은 한국의 동성애 문제 특히 군대 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수많은 남자들이 동성애 파트너를 구하고, 군대 내에서 문란하고 난잡한 난교행위가 벌어지고 있음은 경악할 일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섹스 파트너를 바꾸는 행위는 타락, 중독, 인내심 없음, 무절제, 자제력 없음 같은 인간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단어로 표현할 수준에서 벗어난 것 같다.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람이 피해야 할 세 가지 성품에 ‘악덕’, ‘자제력 없음’, 그리고 ‘짐승 같은 것’이 있다고 했는데 ‘짐승 같은 것’에 동성애를 하나의 예로 들었다. 군대 내 집단 난교, 수백 명에 이르는 섹스 상대자를 보면 2500년 전 철학자의 말이 절대 틀리지 않았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거부하기 어려운 가장 강렬한 즐거움은 촉각과 미각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본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감각적인 즐거움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 해롭다.

감각적 즐거움의 본질은 즐거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해로움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성 속에 절제와 자제력이라는 안전장치를 내재해두었다. 그리고 인류 역사 내내 절제도 자제력도 없이 성욕과 식욕을 탐닉하는 인간을 ‘짐승 같은 것’이라는 가장 나쁜 성품이라 판단하였으며 이에 따라 차별하고 사회적 압력을 행사하여 인간종과 사회를 보호하였다. 이러한 일관된 역사를 볼 때 동성애자들이 주장하는 차별 없는 세상, 자유롭게 동성애 할 수 있는 유토피아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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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제력이 무력화되는 이유

스스로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대부분 그것은 즐거움과 관련돼 있고, 인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것은 대부분 고통과 관련돼 있다. 자제력은 즐거움 중에서도 특히 육체적 즐거움과 관련돼 있다. 우리는 정의욕, 성공욕, 명예욕, 지식욕 등의 영혼의 즐거움에는 자제란 말을 쓰지 않는다.

자제력 있는 사람은 이성적으로 추론해낸 것을 끝까지 견지하지만, 자제력 없는 사람은 그것을 쉽게 포기한다. 자제력 있는 사람은 이성에 근거해 그 욕망을 따르지 않지만, 자제력 없는 사람은 자기가 행하는 것이 나쁜 것임을 알면서도 감정에 사로잡혀 행한다. 자제력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이성에 따르면서 그것에 만족하여 자긍심이 생기지만, 자제력 없는 사람은 자신의 이성에 따르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후회하여 자긍심이 작아지며, 이것이 반복되면 태생부터 자제력 없이 태어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업신여겨 타락에 이르게 된다.

자제력 없음은 나쁜 욕망임을 분별하는 이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상태라서 ‘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악덕이라고 볼 수 없지만, 무절제는 눈앞의 즐거움은 무조건 즐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설득이 어렵고 후회와 반성이 없으므로 용서가 불가하여 악덕이다.

연합뉴스 제공


인내심은 자신에게 이로운 고통이나 마땅히 견뎌야 할 고통을 이겨내는 성품을 말하는데 이러한 성품은 훈육을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내심을 키우는 것은 학교 교육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에게 이로운 고통을 포함하여 모든 고통을 무조건 나쁜 것, 더 나아가 악이라 생각하여 회피하고 분노하며, 고통을 주는 사람을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즐거움이 없는 상태를 고통으로 여겨 즐거움에 대한 갈증을 스스로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훈육이 잘못됐거나 성품이 나약하거나,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사이 자제력을 잃고, 말초적이며 파멸적인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에는 펜타닐에 중독되어 살아있는 송장 같은 자들이 널려있으며, 한국에는 청소년 동성애자, AIDS 환자, 마약 중독자들이 부쩍 늘었고, 이태원에서는 수백 명이 할로윈 축제를 즐기다 압사당하는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다.

소크라테스는 ‘학문적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 자제력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제대로 알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없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볼 때 소크라테스의 말은 확실히 틀렸다. 아무리 많이 배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성충동을 못 이겨 한순간에 추락하기 때문이다. 만약 소크라테스의 말이 옳다면 학문적 지식이 있는 사람의 자제력을 잃게 만들어 무지상태와 다름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2019 초등학교 교과서 6학년 보건 교과서(YBM출판사) (사진=생명인권학부모연합 제공)


자제력이 무력화되는 이유 중 가장 흔한 것은 ‘습관’이다. 신체적 즐거움은 가장 훌륭한 고통의 치료제라서 어려서 성적 학대를 당했거나, 따돌림을 당해 외롭게 자랐거나, 이성으로부터 배신이나 실연 등의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자극적인 즐거움을 찾게 된다. 고통이 크고 장시간 계속되었을수록 더 자극적이고 비정상적 즐거움을 추구하게 된다. 신체적 즐거움은 매우 강력한 즐거움이므로, 이에 습관이 된 사람은 다른 것에서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악순환이 반복된다.

빈번한 자극도 자제력을 무력화 시킨다. 동성애에 대한 필자의 글에 어떤 사람이 ‘ 매일 인터넷에 동성애가 널렸는데 어쩌란 말인가?’라는 댓글을 달았다. 인터넷에 동성애나 그 밖의 변태적 성애 동영상이 수없이 많다. 품위를 지켜야 하는 인터넷 신문에도 자극적이고 음란한 기사와 널려있으니, 마치 인터넷 미디어들이 합심하여 국민의 도덕성을 무너뜨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 같다. 매년 6월 말이면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동성애 축제와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학교에서는 성교육이랍시고 어른이 보아도 민망한 나체 사진을 호기심이 왕성한 학생들에게 보여 주고 있으니, 국민 전체가 성적 자극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품이 바르고 정직하여 이런 자극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라도 문제는 도덕의 경계선이 후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 판사, 고위층 공무원, 정치인이 그렇게 된다면 도덕 윤리를 지켜야 하는 최전선이 무너지는 것이다.

(8편은 8월28일)

오순영 칼럼리스트 / 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