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제4권 제96호

-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전 3권 중 2권
- 대한제국 광무 5년(1901년) 5월7일 (火)
- 제국신문 논설

김두천 승인 2023.11.15 09:00 의견 0

<더프리덤타임즈>는 지난 2022년 10월1일 창간을 했다. 인터넷뉴스 창간 전 시스템 작업을 마친 직후 곧바로 비봉출판사에서 출간한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3권 중 제1권을 지난해 9월 20일부터 올해 9월19일까지 당시 보도 날짜를 따라 그대로 전재(全載)했다. 약 125년 전 우리 시대상(時代相)을 그렇게 간접 경험을 했다.

독자들은 매일 혹은 며칠을 띄워 연재된 논설문집을 보면서 1권을 본 것이다.

이제 창간 1주년을 맞아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제2권을 이날부터 연재한다.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에는 서재필이 조직한 학생청년회 ‘협성회’ 토론회를 이끈 이승만이 ‘협성회보’ 제작 편집을 맡았던 신문에서 수록한 것과 23세의 이승만이 ‘매일신문’을 창간 후 수록한 것 그리고 한성 감옥 복역 중(1899년~1904년)에 비밀리 집필하여 감옥 밖으로 보내 제국신문에 게재했던 수백 편의 논설 중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공화제를 채택하고 있는 공화국이다. 공화국으로서 건국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은 작금의 시대 사람들에게는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잘못된 인식과 나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과는 상관이 없었다. 이미 그는 유일 후보로 최소 득표수를 너끈히 넘긴 당선자였다.

예나 지금이나 아랫사람 관리를 잘못하면 윗사람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지만, 이 나라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그 잣대가 너무도 가혹해 그의 훌륭한 업적은 논(論)하는 것조차도 불편하게 되었다.

허나, 만고의 진리 중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계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절대 변하지 않은 진실과 바로 잡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 중에서 다음의 내용은 제일 우선시 되어야 만이 이 땅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모든 언론의 정통성과 역사를 재정립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1898년 4월 9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이 창간한 날이다. 이 신문을 창간한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다.

그는 무지한 국민을 하루빨리 계몽해서 ‘똑똑한 국민’으로 만들고 싶어서 신문을 창간한 것이다.

하지만,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1896년 4월 7일 창간해서 오늘날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서재필의 피는 한국인(人)지 모르지만, 그는 미국인(人)이다. 서대문형무소에 전시된 서재필에 관한 내용을 보면, 그는 이 땅에서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기록 되어 있을 정도로 당시 그는 철저히 미국인(人)이었다.

고로, 대한민국 최초의 일간 신문인 <매일신문> 창간된 날짜에 맞춰 ‘신문의 날’을 바꿔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 국민인 ‘이승만’이 최초로 신문을 만들었다. 훗날 그는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인(人) 만든 신문 날짜에 맞춰 ‘신문의 날’로 정하자!

대한제국 광무 5년(1901년) 5월7일 제국신문 제4권 제96호에 실린 논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세상에 문명한 학문과 굉장한 사업을 가만히 궁구하여 볼 지경이면, 실상은 모두 남과 비교하여 남보다 낫게 하여 보자는 생각을 말미암아 된 일이라. 자래로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나라와 통하지 아니하여, 남의 좋은 것을 본받고 나의 좋은 것으로 남을 가르치며 좋고 언짢은 것을 비교하여 승벽을 다투어 볼 생각은 없고, 다만 좋으나 언짢으나 내 것만 알고 지내었으므로, 세상에 내 것 밖에 다른 것은 없는 줄로 여기고 지내다가, 지금은 남들과 상통하고 보니, 태서 각국이 서로 문명 부강함을 다투어 비교하던 나라들과 혼자 문을 닫고 되는 대로 지내던 나라와 함께 놓고 보건대, 그 등분이 어떻다 하리오.
이것을 보면 지금부터는 좋든지 언짢든지 내 것과 남의 것을 항상 서로 비교하여야 쓸지라. 우리의 항상 하는 이 말이 보기에는 소홀한 듯하나, 말하는 사람은 주야로 마음을 괴로이 하여 자기 학문대로 극진히 애쓰고 하는 말이니, 부디 마음을 깊이 머물어 보시오.

외국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 조선 인종은 크고 일은 도무지 못한다 하거늘, 우리가 분을 내어 묻되, 이 사람들이 전에는 그런 사업을 듣고 보지 못하였으므로 당초에 생각도 못하였거니와, 차차 보고 들어 마음만 나면 못할 일이 없을 터인데 큰일을 못하리라 함은 무슨 말이뇨 한즉, 그 사람이 대답이, 조선 사람은 학문이 없어서 남을 시기하고 의심하므로 길고 오래 갈 일은 마음도 못 먹고 모두 당장 눈앞에 조그마한 이(利)를 생각하여 길고 큰 이를 잊어버리므로 저마다 제 손으로 제 뺨치는 사업이라, 어찌 큰일을 하리오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분히 여겨, 아무쪼록 우리 대한 사람이 조선 인종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여 힘쓰고 도모하는 바이러니, 근자에 민간 사회상 되어가는 일을 혹보면 과연 외국 사람의 말이 학문 있고 옳은 일이라. 진실로 부끄러운 바로다.

대개 외국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거창한 일을 국중(國中)에 한량없이 하거늘,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럿이 합심하여 한 가지 큰 일을 성사한 것이 도무지 없으니, 이는 다른 까닭이 아니라 첫째 시기요, 둘째 의심이라.

남과 모이는 자리에서 나보다 나은 이를 보면 아무쪼록 그 사람의 학문과 행실을 배울 생각은 없고, 뒤로 다니며 쏙살거리질 하여 아무쪼록 그 사람을 못 견디도록 만들고 내가 그 명예와 이익을 취하려고 하며, 남보다 나은 사람은 남을 가르쳐서 나의 좋은 것을 남과 함께 할 생각은 없고, 청기와 장수와 같이 아무쪼록 남을 모르게 하여 나 혼자하려고 하니, 이는 서로 시기하는 악습이다.

둘째, 사람이 둘이 모이면 둘이 다 각심(各心)이고, 셋이 모이면 셋이 다 각심이 되어, 할 일을 의론할 적에 각기 마음은 따로 감추고 말만 좋게 하다가, 헤어져서는 그 일이 좋은 것이면 성사 여부는 어찌 되었든지 돌아다니며 자기가 혼자 한 줄로 말하여 요공(要功)이나 하며, 좋지 못한 일이면 아무리 비밀히 의론하였더라도 흠담을 한다든지, 친구를 대하여 그 일을 발각을 시키든지 하여, 같이 의론한 일을 아니 되게도 하며, 의론한 사람을 망하게도 하니, 그러하고야 도적질인들 어찌 여럿이 합심하여 크게 하여 볼 수 있으리오. 이것은 남을 의심하는 근원이라. 그런고로 사람이 여럿이 모일수록 의론이 여러 가지로 되며 마음이 다 다른지라.

이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는 나라를 문명 부강하기는 고사하고 사회상에 작은 일도 못할 줄 분명히 아는 것이니, 우리는 바라건대, 이 말을 범연히 보시지 말고 각기 나의 마음을 새로이 하기를 바라노라.

(다음 호는 11월17일 제97호)

<편집자 주>

비봉출판사 박기봉 대표는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1970년 서울상대 경제학과 졸업 후 1980년에 비봉출판사를 설립했다. 1994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를 역임했으며, 1966년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맹자(孟子), 충무공 이순신(4권),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신채호), 삼국연의(8권), 독립정신(이승만), 우남 이승만 한시집(漢詩集, 일명 체역집(替役集) 등이 있다.

박기봉 대표의 열열한 협조 덕분에 독자들에게 당시 시대상과 함께 젊은 이승만의 사고(思考)와 사상(思想)을 엿볼 수 있게 하여 큰 감사의 인사를 지면으로 다시한번 드린다.

연재 중 어느 독자는 “이렇게 훌륭한 글들을 우리가 배운 교과서에 단 한 점도 실리지 않았다는 것은 국어학자들의 기만(欺瞞)이고 역사학자들의 배임(背任)이다”라고 했다.

이승만의 ‘독립정신’과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이 대한민국 교과서에 실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우남 이승만 論說文集(논설문집)> 제2권을 연재한다.

이번 연재는 지난 1권처럼 당시 보도된 날짜가 아닌 월(月). 수(水), 금(金)요일 순으로 하여 1주일 3번 전재(全載) 한다.

사진=더프리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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