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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의사들과 같아지고 싶어 한다.
현대의 지적·윤리적 분위기는 상대주의가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다수가 옳지 않다고 하면 옳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 한류로 떠들썩하지만, 실상 한국인은 그 어느 때보다 무기력하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심해졌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며, 고난이 닥치면 극복하기보다 포기하는 것을 택한다. 모든 것을 평준화하고 그 속에 사는 것을 이상으로 여긴다. 한국인이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기력의 원인은 무엇일까?
수 천 년 동안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들은 서로 만나 의견을 나눈 적도 없지만, 대체로 동의했던 삶의 기본 규범과 가치, 윤리와 도덕이 존재한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본성을 갖고 태어난다는 귀중한 증거 중 하나이다. 아무리 인체를 해부해도 찾을 수 없지만, 모든 인간은 마음을 갖고 있다. 마음속에는 본능과 본성이 담겨 있는데, 본능은 생존에 관한 것이고, 본성은 삶에 관한 것이다. 본성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악보다 선을, 불의보다 정의를, 모순보다 합리를, 불행보다 행복을, 속박보다 자유를, 가난보다 부를, 슬픔보다 기쁨을, 실패보다 성공을, 추한 것보다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본성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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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본성이 없었다면 문명이 만들어졌을까? 철학, 과학, 예술, 미학, 심리학, 그밖에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발견과 발명은 인간 본성의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의 본성은 인간이 만들어 낸 과학 문명에 의해 가장 많이 훼손되었다.
첫 번째 훼손의 대사건은 진화론의 등장이었다. 진화론은 1859년 『종의 기원』으로 시작되어 70년 동안 학계에서 갑론을박하다가 1930년부터 일반 대중에게까지 퍼져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100년 전 사람과 그 이후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100년 전 사람이 신의 피조물이었다면 이후 사람은 원숭이의 자손이었다.
두 번째 훼손은 현대 물리학에 의해서였다. 자연의 모든 법칙은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물질들의 물리적 작용의 결과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사고, 판단, 행동 역시도 물질 작용의 결과일 뿐이라는 의식을 만들어 냈다. 인간은 ‘기계 속 유령’이 되었다. 형이상학은 자취를 감추었고 사랑, 상상, 관념, 희망, 기쁨, 정열 등의 비물질적인 것이 레고 블록을 쌓듯 뇌의 물질적 작용에 의한 것이 되었다. 지동설에 의해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것처럼, 현대 물리학에 의해 인간은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그 자리를 물질이 차지하게 되었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아니라 과학이 만물의 척도가 되었다.
세 번째 훼손은 생명공학에 의해서였다.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은 DNA 나선 구조를 발견해 생명 현상이 DNA 염기서열에 의해서 일어남을 밝혔다.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존하는 기계’가 되었다. 유전자를 갖고 있는 모든 동식물의 개조, 개량, 복제가 가능해졌다. 양, 개, 원숭이의 복제가 이루어졌다. GMO 식품, GMO 동물들이 만들어졌으며, mRNA 백신이 만들어져 세계인에게 접종되면서 새로운 인종인 GMO 인류가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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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인류는 이렇게 본성을 훼손당하여 무력해졌다. 한편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세습 왕가의 독재에 의해 인간성이 말살되었고, 남쪽에서는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만들어진 속도의 독재에 의해 인간성이 약화하였다. ‘빨리빨리’라는 말로 대변되는 속도의 독재는 사회의 각 부분에 얄팍함, 경솔함의 거품을 만들어 냈고, 거품들이 터질 때마다 비극적인 참상이 드러났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IMF외환위기 사태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것을 빨리 소유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숙고와 토론은 배제되었으며, 학교에서는 주입식 교육만 이루어졌다. 그 와중에도 위선적인 유물론자들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혼란을 가중하였다. 그들이 내건 진보는 사상과 이성의 꾸준한 성숙이 아니라, 소유의 빠른 평준화였다. 이들로 인해 한국인은 더욱 물질화되었다.
"인간은 본래 자유롭게 태어난 존재인데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는 루소의 말은 한국에서 가장 현실화하였다. 한국인의 인간 본성은 세계인보다 더 빠르게 위축되고, 무력해졌다.
무력해진 인간이 비판의식, 저항의식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 자발성은 타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기 위해 타인들과 같아지는 것에만 발휘되었다. 강요가 없음에도 한국인은 자발적으로 타인과 같아지려고 움직였다. 의사라고 다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다 접종받기 때문에 접종받는 국민처럼, 의사들도 다른 의사들이 다 접종하기 때문에 접종하였다. 국민들이 그런 것처럼 의사들도 다른 의사들과 같아지지 않으면 고립될 것이며 집단에서 추방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홀로코스트가 진행 중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할 것인가?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 5편에 계속됩니다.
오순영 칼럼리스트 / 가정의학과 전문의·코로나진실규명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