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직권남용 혐의의 기원인 일본에서는 공무원이 직무상 권한(직권)을 남용해 '일반 국민의 권리를 해칠 때' 죄가 성립합니다. 따라서 공무원 조직 내부의 상하관계에서 직권남용이 적용된 사례는 없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9년 5월29일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첫 공판에서 한국 검찰의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이렇게 비판해 관심을 끌었다. 이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최근까지 관련 수사와 재판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상당수 형사법 전문가들도 이런 쟁점을 법원 판결이 갈피를 못 잡는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글.사진=매일경제 캡처

직권남용죄의 모호한 기준이 공직자를 억누르는 과도한 수사와 감사를 초래해 왔다.

대통령실은 24일 형법 개정을 통해 이 논란을 끝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직권남용죄는 정치적 수사에 악용되며 공직 업무에 부당한 사법 잣대를 들이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할 때 적용된다.

그러나 포괄적 기준으로 수사기관의 남용과 법원의 ‘고무줄 잣대’ 판결이 이어졌다.

2016년 국정농단 특검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팀장으로 직권남용죄를 활용해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자백을 받아내고 박근혜 전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들을 구속기소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에서도 이 죄명이 핵심 무기로 사용됐다. 입증의 까다로움과 합법적 직무와의 경계 불명확성으로 무죄 선고가 빈발했다.

2019년 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건은 47개 범죄사실 중 41개에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됐으나, 2023년 1월 1심에서 “대법원장은 재판 개입 직권이 없으며, 직권 없이는 남용도 없다”며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2019년 6월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김학의 전 차관 출국금지 사건, 2015년 4·16 세월호 특조위 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 전 비서실장 등 8명도 2023년 6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됐다.

무죄 양산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법원의 모호한 판단에 대한 비판을 불러왔다.

대통령실은 직권남용죄가 본래 의도를 벗어나 남용된다고 판단, 공직문화 개선 5대 과제의 일환으로 법 개정을 추진한다.

봉욱 민정수석은 “외국 입법례를 참고해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고 남용 여지를 줄인다”며 “법 개정 전에도 수사를 신중히 하고 기소 여부를 세밀히 판단해 무죄를 최소화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