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충돌한 시위대.사진=연합뉴스

인도네시아에서 국회의원 주택 수당 지급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수도 자카르타에서 시작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최소 4명이 사망한 것으로 3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시위가 격화되자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내주로 예정됐던 중국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지난해 9월부터 국회 하원 의원 5백80명이 1인당 월 5천만 루피아(약 4백30만원)가 넘는 주택 수당을 받은 사실이 최근 언론 보도로 뒤늦게 알려지자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 25일부터 대규모 시위가 촉발됐다.

국회의원의 월급과 주택 수당을 포함해 한 달에 약 1억 루피아(약 8백50만원)를 받고 있다는 보도 또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 금액은 자카르타의 월 최저임금 약 10배에 달한다.

숨진 배달기사 초상화 든 동료.사진=연합뉴스


시위대 수백 명은 지난 29일 자카르타 경찰청 기동대 본부로 행진하며 건물 진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하루 전날인 28일 시위 중 경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오토바이 배달 기사 아판 쿠르니아완(21)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찰청장 해임을 요구했다.

사고 목격자들은 현지 방송 매체를 통해 경찰 기동대 소속 장갑차가 시위대를 향해 갑자기 돌진했으며, 쿠르니아완을 치고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깔아뭉갰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와 최루탄을 발사하며 진압을 시도했으며, 일부 시위대는 경찰본부 인근 건물에 불을 지르고 경찰 순찰차와 정부 청사를 파손하기도 했다.

이틀간의 시위로 현재까지 전국에서 최소 4명이 사망한 것으로 AP 통신과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특히 남술라웨시주 마카사르에서는 시위대가 지방의회에 불을 질러 건물에 갇힌 3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2명은 현장에서, 1명은 병원에서 사망했으며, 부상자 중 2명은 불이 붙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수라바야, 욕야카르타, 반둥, 파푸아 등 여러 도시에서 시위가 잇따랐다.

경찰과 충돌한 시위대.사진=연합뉴스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프라보워 대통령은 내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예정됐던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 열병식 참석 계획을 취소했다고 3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지난 29일 TV 연설을 통해 숨진 배달 기사와 유족에게 애도를 표하며 "이번 사건에 깊은 우려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관들의 과도한 행동에 충격을 받았고 실망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불안을 조장하고 혼란을 부추기는 세력에는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며 시위대에게 평정심을 호소하고 국민들에게 정부를 믿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한 쿠르니아완의 부모 자택을 찾아 조의를 표하고 피해 보상을 약속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당국은 배달 기사 사망 사고와 관련된 경찰 기동대원 7명을 구금하여 조사하고 있으나, 장갑차 운전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인권 단체들은 사망 사고 관련 책임자들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자카르타 법률 지원 단체는 시위 중 체포된 6백 명을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자카르타 경찰청 인근서 불 지르는 시위대.사진=연합뉴스


한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Social Networking Service) 플랫폼 틱톡은 인도네시아 내 '폭력 시위'를 이유로 며칠간 생중계하는 라이브 기능을 일시 중단한다고 3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틱톡 대변인은 AFP 통신에 "자발적인 추가적인 안전 조치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아직 한국인 인명피해는 없다"며 당분간 시위가 계속 벌어질 수 있으니 시위 현장 주변에는 접근하지 말고 각별히 안전에 유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배달 기사 사망에 항의하는 동료 기사들의 연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쿠르니아완의 동료 배달 기사 수천명은 자카르타 중심부 도로를 오토바이로 가득 채우며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5%대 경제 성장률을 유지했으나 제조업 분야 일자리 감소로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공식 해고된 노동자 수는 4만2천명을 넘어섰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퍼센트(%)나 급증한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