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에서 유엔을 향해 작심한 듯 독설을 퍼부었다.

지난 2019년 이후 6년 만에 유엔 총회 연단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세계 질서 주도 입장을 전면에 내세우며, 유엔의 국제 분쟁 해결 능력 부재와 기후위기론의 허위성을 맹렬히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시작과 함께 "내 첫 임기에 번영하고 평화로웠던 세계를 향해 이 웅장한 홀에 서서 연설한 지 6년이 지났다"고 운을 뗀 뒤, 자신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세계와 미국은 위기와 재난의 연속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집권 2기 행정부 출범 8개월 만에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나라가 됐으며, 그 어느 나라도 근접조차 하지 못한다"며 "지금이 진정 미국의 황금기"라고 내치 성과를 자화자찬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집권 2기 들어 전 세계에서 7개의 분쟁 종식을 중재한 점을 부각하며 유엔의 역할을 노골적으로 폄훼했다.

그는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전쟁을 막고 끝내는 일에 너무 바빠서 나중에 유엔이 우리를 위해 거기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유엔의 목적은 무엇인가. 유엔은 엄청난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공허한 말뿐이고 이는 전쟁을 해결할 수 없다"고 유엔의 존재 이유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유엔이 주도해온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및 탄소저감 정책에 대해 "전 세계에 저질러진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맹비난을 이어갔다.

그는 과거 유엔 환경 관료들의 기후변화 예언이 실현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기온이 올라가든 내려가든 무슨 일이 벌어지든 기후변화가 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재집권 트럼프 유엔연설 기조 변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재집권 뒤 처음으로 나선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은 전혀 등장하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단순히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데 연설의 주안점을 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이 거론되는 시기에 일단 신중한 기조를 유지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일각에서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유엔총회에 참석한 각국 정상을 향해서는 "이 '녹색 사기'(green scam)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여러분의 나라는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탄소 발자국’은 악의적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꾸며낸 사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유럽이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생산 시설이 붕괴된 반면, 중국은 전 세계 선진국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현 기후 정책의 모순을 꼬집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난민 지원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2024년에 유엔은 약 62만 4천 명의 이주자가 미국으로 이동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3억 7천 2백만 달러의 현금 지원을 예산으로 책정했다"며, 유엔이 불법체류자들에게 음식, 숙소, 교통편과 직불카드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엔은 침략을 막아야 하는 곳이지, 그것을 만들어내거나 자금을 대선 안 된다"고 일갈하며, 불법이민과 고비용의 이른바 그린 재생에너지가 자유로운 세계와 지구의 많은 부분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의 이민정책에 대해 "만약 당신이 불법적으로 미국에 들어온다면 감옥에 가거나, 당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거나, 어쩌면 더 먼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총회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해 "세계 1위의 테러 지원국이 가장 위험한 무기(핵무기)를 갖도록 허용할 수 없다"며 이란의 핵보유 저지에 대한 의지를 밝혔으나, 그보다 더 고도화한 북핵 위협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서방국들이 잇달아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를 인정하는 데 대해선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의 만행에 대한 너무 큰 보상이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과 관련해서는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하는 중국·인도를 "전쟁의 주요 자금원"으로 지목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도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종전 합의 준비가 안 됐다면 미국은 강력한 관세 부과를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오늘 더 안전하고 번영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와 함께하려는 총회장의 모든 국가에 미국의 리더십과 우정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왔다"며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자신에 앞서 연설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언급하며 "과거 브라질이 우리나라에 불공정한 관세를 부과했지만 지금은 우리의 관세로 그들에게 강하게 맞서고 있다"고 말하며, 미국과 협력하지 않는 국가들은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연설 직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의 양자 회담에서는 "미국은 유엔을 100% 지지한다"면서도 "세계 평화와 관련해 유엔이 가진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라는 단서를 달아 발언에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