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억제제.사진=연합뉴스

지난 5년간 국내에서 마약류 식욕억제제 누적 처방량이 10억3천365만정을 넘어서며 심각한 오남용 실태가 드러났다.

특히 여성과 청소년층의 처방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느슨한 처방 기준과 미흡한 관리·감독 시스템이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MFDS, Ministry of Food and Drug Safety)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21일 밝혀졌다.

김선민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마약류 식욕억제제의 누적 처방량은 총 10억3천365만정으로 집계되었다.

연도별 처방량은 2021년 2억4천342만정에서 지난해 2억1천713만정으로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매년 2억정 이상이 처방되고 있는 실정이다.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Glucagon-Like Peptide-1) 계열의 신규 비만치료제인 위고비(Wegovy)나 마운자로(Mounjaro) 등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의 사용 추세는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주요 성분별로는 지난해 기준으로 불면, 불안 등의 부작용을 동반하는 펜터민(Phentermine)을 70만명, 펜디메트라진(Phendimetrazine)을 50만명, 암페프라몬(Amfepramone)을 7만명 이상이 처방받았다.

미국 보건의료연구품질국(AHRQ, Agency for Healthcare Research and Quality)의 2023년 의료비지출패널서베이(MEPS, Medical Expenditure Panel Survey)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펜터민 복용자는 약 107만명(미국 인구 대비 0.31퍼센트(%))으로 추정된다.

이에 반해 한국의 작년 펜터민 복용자는 70만명(한국 인구 대비 1.35퍼센트(%))으로, 인구 비율을 고려했을 때 미국보다 약 4.3배 높은 수치를 보였다.

특히 식욕억제제 처방 환자 108만명 중 여성 환자가 96만9천341명으로 전체의 89.7퍼센트(%)를 차지하며, 남성 환자 11만1천516명에 비해 9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이하 청소년 5천899명에게도 55만여정의 식욕억제제가 처방되었으며, 외국인 처방 환자 또한 2021년 3만4천63명에서 지난해 4만3천804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는 국내의 느슨한 식욕억제제 처방 기준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 해외 주요국은 체질량지수(BMI, Body Mass Index-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27에서 35 이상인 환자에게만 처방을 허용하고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대한비만학회 비만 진료 지침에 따라 체질량지수(BMI) 23 이상을 비만 전 단계로 인정하여 사실상 광범위한 처방이 가능하다.

마약류 식욕억제제 복용으로 인한 불면, 두근거림, 어지러움 등 주요 부작용 신고 또한 증가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불면 68건, 지각 이상 50건 등을 포함해 총 455건으로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오남용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모니터링과 관리, 감독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MFDS)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마약류 식욕억제제 오남용 조치 기준 외 처방으로 '사전알리미(Prescription Alert System)' 경고를 받은 의사 3천636명 중 단 11명(0.3퍼센트(%))만이 행정처분 의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관리·감독 체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수준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MFDS)는 올해 마약류 수사 전담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Special Judicial Police) 인력 5명을 확보하고 4명을 충원했지만, 처방 기준 자체가 느슨한 상태에서 사후 단속만 강화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선민 의원은 "사회적 외모 압력과 의료적 판단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가운데 식욕억제제는 연간 2억정 이상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청소년과 여성 중심의 오남용, 느슨한 체질량지수(BMI) 기준, 미비한 사후 관리체계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의 안전과 정신건강을 위해 마약류 식욕억제제의 처방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재정비하고, 솜방망이 처벌을 막기 위한 관리·감독 시스템을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