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불신 극복ㆍ사법행정 정상화 강조하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3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불신 극복·사법행정 정상화TF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3일 현직 대통령의 재판을 중지하는 이른바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전날 당 수석대변인이 법안 처리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지 하루 만에 이뤄진 전격적인 입장 변경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식적인 입을 대변하는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전날 기자 간담회에서 재판중지법을 두고 "'국정안정법', '국정보호법', '헌법 84조 수호법'으로 호칭하겠다"며 이번 달 말 정기국회 내 처리 가능성까지 시사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박 수석대변인은 오전 최고위원회의 종료 후 첫 브리핑에서는 재판중지법 관련 언급을 하지 않다가, 약 한 시간 뒤 다시 브리핑을 열고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 등 당 지도부 간담회를 통해 국정안정법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은 관세협상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성과, 대국민 보고대회 등에 집중할 때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의 관련 요청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당 지도부를 통해 (대통령실과) 논의했고, 대통령실과 조율을 거친 상황"이라고 답하며 대통령실의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해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당의 사법개혁안 처리 대상에서 재판중지법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며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넣지 않아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강훈식 비서실장 브리핑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3일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재판중지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강 비서실장은 또한 "대통령의 생각도 이와 같다. 대통령은 재판중지법과 관련해 더는 정쟁에 끌어들이지 않고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중지법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 직후인 지난 6월 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뒤 본회의에 계류 중이었다.
당시 당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지 본회의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법안은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가 최근 법원 국정감사를 계기로 추진 논의가 재점화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지된 재판이 속개할 수 있느냐'는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취지로 답변하면서부터다. 이 원론적인 답변 이후 민주당 일각에서는 재판중지법 재추진 의견이 비등하기도 했다.
중지된 5개의 재판부 중 하나라도 재판을 재개한다면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에 반할 뿐 아니라, 국정 마비 사태가 올 것이라는 우려가 당내에서 제기되었다.
이와 함께 지난달 31일 대장동 일당에게 중형을 선고한 1심 판결 또한 재판중지법 추진 움직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과 관련해 배임 혐의로 기소되어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재판중지법 추진이 '개별 의원들의 의견'이라며 공식적으로는 법안 처리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전날부터 전향적인 추진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어제 박 수석대변인의 재판중지법 추진 관련 간담회 메시지는 개인 의견을 표출한 것이 아니라 당 지도부와의 교감 하에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만큼 이는 곧바로 '위인설법' 논란을 불러왔다.
여기에 법안의 이름까지 바꿔 프레임을 전환하려는 시도가 여론의 비판에 부닥치면서 여당과 대통령실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여당이 한미·한중·한일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등 APEC 정상회의 성과 홍보에 주력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정쟁 이슈를 자초했다는 내부 비판도 적지 않았다.
수도권 지역 한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재판중지법을 추진한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다. 지금은 APEC 정상회의 성과를 뒷받침해야 할 마당에 이런 이슈가 나오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원내대표를 지낸 박홍근 의원은 페이스북(Facebook)을 통해 "이번 국감에서 국민의힘이 보여준 정략적 질의와 사법부의 무원칙한 답변이 화근이었다"면서도 "하지만 민주당 내 다소 성급하고 오락가락한 대응 과정도 세련되지는 않았다.
특히 우리는 국정을 무한 책임지는 집권 여당이므로 대통령실과의 불통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두 번째 재판중지법 처리 시도도 최종적으로 없던 일이 됐다.
박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법안 처리를 미루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안 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서 "당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문제는 별도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