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미국 국무부는 3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해가며 북한산 석탄과 철광석을 중국으로 불법 수출하는 데 관여한 선박 7척에 대해 유엔 제재 대상 지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한 관련 유엔 제재를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자금줄을 차단하려는 미국의 단호한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조치로 해석된다.

국무부는 불법 해상 환적 및 위성 이미지 등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이행 의무를 강조하고 나섰다.

◆ 미 국무부, 안보리 결의 위반 '해상 환적' 사례 지목…선박 7척 제재 촉구

국무부 관계자는 이날 언론 브리핑을 통해 제3국 선박들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수출이 금지된 북한산 석탄과 철광석을 운반해 중국으로 운송·하역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유엔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는 관여한 선박 7척을 즉시 유엔 제재 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7년에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71호는 북한의 주력 수출품인 석탄과 철광석 등 주요 광물의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국무부 관계자는 "석탄과 철광석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북한의 수출품으로,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 개발을 위한 핵심 재원이 되고 있다"며 "유엔 대북 제재의 목적은 이런 자금줄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무부가 선박 자동식별시스템(AIS,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출항한 시에라리온(Sierra Leone) 국적 선박 '플라이프리(Flyfree)'는 지난 5월 29일과 31일 두 차례에 걸쳐 북한 인근 해역에서 북한 선박들(톈퉁, 신평 6)로부터 북한산 석탄을 해상 환적을 통해 넘겨받았다.

플라이프리는 이후 해당 석탄을 중국 웨이팡(Weifang)으로 운송해 6월 3일부터 15일 사이에 하역을 마쳤다. 하역 여부는 선박의 선체와 수면이 만나는 '흘수(吃水, draft)' 변화를 추적하여 확인할 수 있다.

해상 환적 과정에서는 화물의 출처를 숨기기 위한 '부유식 크레인(floating crane)'이 이용되었으며, 북한 인근 해역에 있었던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위치 정보 조작 행위(geo-spoofing)도 이뤄졌다고 국무부 관계자는 부연 설명했다.

또 다른 선박 '카지오(Casio)'의 경우 지난 1월 31일 북한산 석탄 또는 철광석을 북한 남포항에서 중국 베이양 항구로 운송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위성사진을 통해 이 선박에서 베이양 항에 석탄 더미가 하역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와 함께 '마스(Mars)', '카르티에(Cartier)', '소피아(Sofia)', '알마니(Armani)', '이리 1(YiLi 1)' 등의 선박도 제재 지정 요청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들 선박 역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북한산 석탄 또는 철광석을 중국 항구로 운송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 "북한 핵·미사일 개발 재원 차단" 목적 강조…러시아·중국에 이행 의무 촉구

국무부 관계자는 이번 제재 추진이 "이 선박들은 북한의 핵 야망을 가능케 하는 물적 수단"이라고 지적하며 "이 선박들을 제재 목록에 올리는 것은 해운업계, 보험사, 선박등록국에 북한의 불법 밀수 행위에 가담하면 대가가 따른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 유엔 제재가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제재의 효과는 제대로 이행되고 집행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제재 위반에 아무런 대응이 없으면 제재는 의미를 잃게 되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같은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은 통제되지 않은 채 계속 확대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제재안은 유엔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의 회람 이후 어느 회원국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5일이 지난 시점에 자동으로 제재 대상 지정이 확정된다.

다만, 이 안건에 이의를 제기하는 회원국은 즉각 '반대' 의사를 표하거나 최대 9개월 동안 '보류' 조치를 할 수 있다.

문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면서 최근 북한과 밀착 행보를 보이는 러시아나 중국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 제재안이 통과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무부 관계자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은 해당 제재를 만든 당사자이며 다른 회원국과 마찬가지로 이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제재 대상 지명을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러시아, 중국, 북한이 현재 진행 중인 활동을 숨기기 어렵게 만든다면 아주 바람직한 결과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회동 불발 직후 조치…미국 대북 압박 정책 변화에 국제사회 촉각

미국의 이번 제재 추진은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과의 만남이 무산된 직후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한국 등 아시아 순방 계기에 김 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피력했으나, 회동은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미국의 이번 제재 추진은 비핵화 및 관련 대화를 전면 거부하고 있는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기 위해 유화책만 쓰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 속에 한동안 소원한 듯 보이다가 김정은의 지난 9월 방중 및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복원 흐름을 보이는 북한과 중국 간의 교역을 정면으로 겨냥했다는 점에서도 이번 제재 추진은 주목된다.

이러한 타이밍과 관련하여 브리핑을 진행한 국무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지 못한 것과 이번 제재 추진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 새로운 대북 압박 전술인지에 대한 질문에 "이번 조치는 몇 달 동안 준비해온 것으로, 이미 봄부터 이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며 "지금 시점과 특별한 연관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가 북한의 불법 활동을 저지하고 핵 위협에 대응하는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번 국제사회에 천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