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항소 포기' 관련 입장 밝히는 정성호 장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 이후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범죄수익 환수 여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법조계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피해자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 금액을 구제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앞서 법원이 "공사가 민사 절차를 통해 피해를 회복하는 것은 곤란해 보인다"고 판단한 바 있어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 정성호 장관 "민사소송 통해 피해 회복 가능" 주장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날 정부 과천청사에서 가진 약식 문답(도어스테핑)을 통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범죄수익환수규제법이나 부패재산몰수법에 의하면 몰수나 추징은 피해자가 없는 경우에 국가가 대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은 피해자가 있고 약 2천억 원 정도는 이미 몰수보전되어 있다"며 "피해자라고 규정된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이에 대해 민사소송도 제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몰수보전이란 범죄로 얻은 불법 재산을 형 확정 전에 빼돌릴 가능성에 대비하여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동결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범죄로 얻은 불법 수익은 몰수하고, 이미 처분하는 등의 사유로 몰수가 불가능할 경우 추징하며, 각 경우에 대한 보전 조치는 유죄 확정 시 집행에 앞서 미리 자산을 동결·확보하는 효과를 가진다.

앞서 성남도시개발공사 측은 지난 2024년 11월 대장동 사업을 시행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와 사업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대통령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공사 측은 민사합의부가 심리할 수 있는 청구액 범위인 5억 원 이상을 고려해 일단 5억1천만 원을 청구했으며, 이후 형사재판 결과에 따라 액수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 장관의 이러한 언급은 범죄로 인해 금전적인 손해를 입은 '피해자'가 명확히 존재하는 사건에서는 검찰이 피해자 대신 범죄수익을 추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법원.사진=연합뉴스


◆ 법원 판단 및 부패재산몰수법 취지 '엇박자' 논란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 장관의 이러한 해석이 부패재산몰수법의 입법 취지와 다소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패재산몰수법은 몰수·추징의 요건으로 '범죄피해자가 그 재산에 관해 범인에 대한 재산반환 청구권 또는 손해배상 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없는 등 피해 회복이 심히 곤란한 경우'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범죄 피해자가 자력으로 금전적 피해 회복이 어려운 사안의 경우, 검사가 범죄 피해 재산을 몰수하거나 추징한 다음 이를 다시 피해자에게 환부하여 피해자의 회복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1심은 대장동 사건으로 인한 범죄 피해가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른 범죄 피해 재산으로서 몰수·추징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등 민사소송의 기일이 1심 변론기일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았고, 업무상 배임과 관련한 이 대통령의 재판은 절차 진행이 중단된 상태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의 피해 재산은 형사소송 결과가 모두 나온 뒤 민사소송 절차를 통해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따라서 뒤늦게나마 피해 회복 과정에 국가(검찰)가 개입하여 범죄 피해 재산을 추징한 다음 이를 다시 피해자에게 환부하는 조처를 함으로써 신속한 피해 회복을 돕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요약하면 피해자인 성남도시개발공사의 피해 회복이 어려운 경우로 보이므로, 검찰이 몰수·추징을 통해 피해 회복을 돕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뒤숭숭한 검찰 '총장대행 항소포기 경위 설명 요구'
검찰의 대장동 개발 비리사건 항소 포기와 관련해 일선 검사장들이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항소포기 지시경위·근거' 등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낸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검찰기와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검찰 항소 포기로 '428억 원' 추징금 상한선…몰수보전 재산 향방 주목

정 장관이 몰수보전 돼있다고 언급한 2천억 원이 민사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대로 남아있을지도 미지수다.

수사 당시 기소된 대장동 일당과 관련해서는 약 2천230억 원대의 범죄수익이 몰수 또는 추징 보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피고인별로는 김만배 씨 약 1천250억 원, 남욱 변호사 약 514억 원, 정영학 회계사 약 256억 원 등이다.

1심은 '성남시 수뇌부'와 민간업자들이 공모해 배임을 저지른 결과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장동 택지 분양 배당금 중 최소한 약 1천128억 원을 더 확보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실제 추징금은 김만배 씨에게 428억 원만 부과되었는데, 이는 공사의 최종 피해액을 추산할 수는 있지만 범죄 발생 시점의 배임 피해액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대장동 사업을 기획하고 이익구조를 짰던 '설계자'로 지목된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는 아예 추징금이 부과되지 않았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추징금 '상한선'은 428억 원으로 정해졌다.

형사소송법 제368조의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향후 2심과 3심에서 사정 변경이 생기더라도 428억 원 이상은 추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들은 이를 토대로 향후 법원에 몰수보전 상태인 2천억 원 상당의 재산 중 김만배 씨에게 부과된 428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의 '동결 조치'를 풀어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검찰이 어렵게 찾아내 몰수나 추징을 염두에 두고 동결 조치했던 재산들이 다시 '대장동 일당'에게 돌아가게 된다.

향후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사 소송에서 승리하더라도, 다시 숨겨진 재산을 찾아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민사소송을 통해 실질적인 범죄수익 환수가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부패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찰 수사팀이 대규모로 투입되어 장기간 수사를 벌이고도 428억 원 추징에 그친 상황에서, 강제수사권이 없는 성남도시개발공사와 법률 대리인단이 민사소송으로 더 큰 금액을 환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지적이다.

통상 민사소송에서 배상을 받아내려면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이는 성남도시개발공사나 성남시의 몫이다.

이런 종류의 사건은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면 해당 판결문과 관련 증거가 민사상 증거로 활용된다.

그러나 1심에서 상당 부분이 인정되지 않아 '무죄'가 되면 환수가 불가능하다.

또한, 법원 판단대로 이 사건은 관련 사건의 재판 진행이 매우 느리거나 사실상 정지된 만큼, 환수가 이루어지더라도 그 시점이 매우 늦어질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범죄수익환수 관련 업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은 권력형 부패범죄로 수천억 원대 범죄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고, 법원도 피해자의 자체적인 피해 복구가 어렵다고 본 사안"이라며 "민사 소송으로 피해액을 환수하면 되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생각"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