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사진=연합뉴스


중국 외교부는 15일 주일 중국대사관 위챗 공식 계정을 통해 자국민에게 가까운 시일 내 일본 방문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를 일본 존립위기 사태로 공식 규정한 지 8일 만에 나온 조치다.

다카이치 총리는 7일 중의원(衆議院) 예산위원회에서 입헌민주당 오카다 가쓰야 의원의 질의에 “중국이 대만을 해상 봉쇄하고 미군이 개입하면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전함을 동원한 무력 행사라면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존립위기 사태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 ‘대만 유사=일본 유사’ 첫 공식 선언…역대 총리와 완전 결별

문제의 발언은 오카다 의원이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다카이치 총리의 과거 발언을 인용하며 대응 입장을 묻는 과정에서 나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미군이 봉쇄 해제를 위해 출동하면 중국이 이를 저지하려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무력 충돌이 수반되면 일본 존립이 위협받는 사태”라고 설명했다.

현직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를 공식 석상에서 존립위기 사태로 명시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지난해 2월 유사 질문에 “정보 종합 판단이 필요해 일률적으로 말하기 곤란하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는 역대 총리들의 전형적 대응 방식이었다.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8일 취재진 앞에서 “매우 놀랐다”며 “국내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작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대만 유사는 일본 유사”라고 공언한 바 있다.

엑스(X, 구 트위터) 캡처


◆ 중국 ‘말 폭탄’에서 ‘실력 행사’로…린젠 “불에 타 죽을 것”

중국은 즉각 강경 대응에 나섰다.

쉐젠 주오사카 총영사는 지난 9일 엑스(X, 구 트위터)에 “‘대만 유사는 일본 유사’는 죽음의 길”이라며 “들이민 더러운 목을 벨 수밖에 없다”는 위협성 글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일본 정부는 다음날인 10일 “재외 공관장으로서 부적절하다”며 중국에 항의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다카이치 발언은 일본의 정치적 약속을 위반한 것”이라며 “중국은 강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13일에는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하면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경고 수위를 높였다.

같은 날 밤 쑨웨이둥 외교부 부부장은 가나스기 겐지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했다.

일본 외무성은 14일 주일 중국대사를 맞초치하며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 5조5천억원 소비 시장 ‘직격탄’…중국, 수산물·희토류 카드도 대기

15일 방문 자제 권고는 실질적 경제 압박으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방일 중국인은 전체 외국인 소비의 28%인 5천901억엔(약 5조5천억원)을 지출했다.

중국인은 방일 외국인 중 21.5%로 최다 비중을 차지한다.

교도통신은 “관광업 타격을 노린 조치”라며 “방문 자제 분위기가 확산하면 방일 수요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중단했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이달 초 재개했으나, 수출 허가 지연 등으로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

2010년 센카쿠열도 갈등 당시 희토류 수출 금지로 일본에 타격을 준 전례도 있다.

APEC 2세션 시진핑 중국 주석과 다카이치 일본 총리


일본 내부 “총리 발언 신중치 못했다”…정부는 ‘냉정 대응’ 기조

일본 내부에서도 다카이치 발언에 대한 비판이 확산된다.

마이니치신문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안보·경제 악영향이 크므로 급속한 관계 악화는 피하고 싶다”고 전했다.

한 당국자는 “주고받기가 계속되면 여론 악화로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10일 국회에서 발언 철회 요구를 거부하면서도 “기존 정부 입장을 바꾸는 것은 아니며, 앞으로 특정 사례를 상정해 명언하는 것은 삼가겠다”고 밝혔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지난 14일 “중국에 양국 관계의 큰 방향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적절한 대응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자민당 정조회장은 이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양국 관계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