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안 외곽의 건릉.
건릉은 당나라 고종과 측천무후의 합장묘로 61개국 외국 사신들의 석상이 있는 곳이다.사진=연합뉴스
◆ '物極必反 器滿則傾'…역사 속에서 배우는 '바름'의 가치
바를 正자를 破字하면 '하늘(一) 아래 멈춘다(止)'라는 뜻이다.
그리고 바른 삶은 역사에서도 배워야 한다. 역사를 무시하면 반드시 큰 화를 입고 멸망하게 된다.
당 태종의 후궁이었던 무칙(武曌)은 아들 중종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황제가 된다. 이 사람이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則天武后)다. 잔인한 숙청과 독단적 정치행태를 거듭하다가 신하들의 반발에 부딪힌 측천무후는 결국 친위대의 쿠데타로 폐위된다.
소안환(蘇安桓)이 그녀의 자진 퇴위를 권유하며 올린 '물극필반 기만즉경(物極必反 器滿則傾)'의 상소가 그대로 이뤄진 반전의 역사였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뒤집히고, 그릇이 가득 차면 기울어 넘친다"는 뜻이다.
히틀러(가운데)가 1931년 12월 5일 뮌헨의 나치 본부를 떠나며 당원들로부터 인사를 받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근세사에서도 1936년 실시된 독일의회 선거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98.8%의 득표율로 집권당이 된다. 독일 국민 절대 다수의 지지로 전대미문의 권력을 거머쥔 총통 히틀러는 법관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만약 그대들이 총통의 자리에 앉아 있다면 어떻게 판결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재판하라!" 사법은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히틀러는 법 위에 군림하고 삼권분립은 무너졌다.
희대의 살인마에게 입법권과 행정권에 이어 사법권까지 통째로 안겨준 독일 국민은 수백만 유대인 집단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의 참패를 겪게 되자 비로소 잘못된 선택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저들은 악마를 천사로 착각했다. '악마는 빛나는 천사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에'(고린도후서 11:14) 독일은 지금도 그때의 과오를 뉘우치며 몸서리친다.
'백자 양각 매화무늬 계영배'의 내부 이미지.
잔 내부에 관이 있어서 일정량의 술을 따르면 대기압으로 인해 잔 밑에 있는 그릇으로 술이 빠져나간다. 이것을 '사이펀'이라고 한다.사진=국립중앙박물관
◆ 도공의 눈물 '계영배'와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
조선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어 이름을 날린 도공(陶工) 유명옥은 음주가무(飮酒歌舞)의 방탕한 생활로 삶이 파탄에 이르게 되자,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눈물을 쏟으며 계영배(戒盈杯)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득 찬 것을 경계하라'는 뜻의 이 잔은 술이 7할의 높이를 넘으면 잔 밑으로 새나가도록 설계되었는데, 그 안에는 말굽 모양의 관이 있어 대기압과 중력의 차이로 사이펀(siphon, 높은 곳의 액체를 낮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현상) 현상이 일어난다.
훗날 계영배로 술을 마시던 거상(巨商) 임상옥은 술이 자꾸 새나가자 화가 나서 잔을 던져 깨뜨렸다가 문득 잔에 담긴 비밀을 알게 된다.
그 뒤로 도공의 눈물이 담긴 계영배를 늘 곁에 두고 탐욕·노여움·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을 다스렸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최인호의 소설 《상도》의 주된 내용이다.
계영배에 흐르는 도공의 눈물에는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깨우침이 짙게 배어 있다.
일도, 사랑도, 공부도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
출세나 성공도 사람 됨됨이나 지닌 역량에 비해 지나치면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에 해를 끼치기 마련이다.
진보(왼쪽)·자유공화시민(보수)단체 집회.사진=연합뉴스
◆ 영혼 없는 질주 끝에는 파멸…한국 정치에 고하는 '지지(知止)'의 미덕
지금 우리가 생생히 경험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실은 계엄-탄핵-보복의 극한과 극단의 독선을 부르는 반전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풀코스 마라톤 경기에서도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들르는 짧은 멈춤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물며 자유민주국가의 정치행로에서 멈출 줄 모르는 극단의 질주는 반전을 부르고 파멸의 길로 직행한다.
히틀러가 독일 법관들에게 요구한 '삼권분립 없는 껍데기 사법'이 '오늘날 한국의 법 위에 군림하는 절대권력'을 연상케 한다. 절대권력자 히틀러의 종말은 패전과 자살이었다.
바를 정(正)자를 파자(破字)하면 '하늘(一) 아래 멈춘다(止)'는 뜻이 된다. 하늘처럼 높은 가치 앞에서는 '멈출 줄 아는' 지지(知止)가 바른 지혜이다.
달려야 할 때 달리지 않고 머뭇거리면 실패가 불보듯 뻔하지만, 멈출 줄 모르고 마냥 달리기만 하는 것은 더 어리석은 짓이다. 마치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무법 차량이나 다름없다.
인문(人文)의 향기 없는 산업화는 물신(物神)의 우상 앞에 엎드려지고, 공화(共和)의 정신을 망각한 선동정치는 천박한 포퓰리즘으로 전락한다.
자기편만 옳고 정의라는 정치집단은 사람다움의 공동체라기보다 탐욕에 찌든 천박한 자기확증 편향의 집단일 뿐이다.
나치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고 히틀러에 열광하던 시절, 악마의 실체를 꿰뚫어 본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정치선동에 휘둘리는 대중을 '신앙 없는 미신(迷信)의 집단'이라고 꾸짖었다.
영국 속담에 "거지가 말을 타면 말이 쓰러질 때까지 탄다"는 말이 있다. 귀족의 고상한 취미이자 상징인 승마의 기회와 요행을 얻게 된 거지는 절제와 휴식을 모르고 끝까지 끝간데없이 간 것이다.
반대로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가끔씩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너무 빨리 달리는 동안 영혼이 못 따라왔을까 해서 그렇다.
영혼 없는 질주, 절제 없는 탐욕, 무소불위의 권력, 절대 권력은 절대로 망한다는 동서고금의 법칙이자 역사이다.
지금쯤 물극필반 기만즉경(物極必反 器滿則傾)의 상소를 올린 진정한 충신이 한두 사람 기다려지는 오늘이다.
※ 본 특별기고는 필자의 익명 요청에 따라 게재되었으며, 본문에 담긴 내용은 전적으로 필자 개인의 소견으로 본지의 공식적인 편집 방향과 상이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