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가는 법의 기둥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기둥이 균열되고, 그 위에서 특권층이 안락하게 앉아 있는 있다.이미지=AI가 만든 이미지/더프리덤타임즈


권력은 법 위에 설 수 없고, 국회의원과 검사 등 특권 엘리트들이 정의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것이 민주공화국의 상식이다.

그러나 법을 만들고 집행하라고 위임받은 일부 국회의원들과 특검 및 검사들이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검사사칭 권력의 똥개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정권의 이해관계 필요에 따라 물고 뜯는 도구로 전락했고, 그 대가로 특권과 안락함을 누려왔다.

한때 윤석열에게 눈도장을 찍어 출세의 사다리를 오르며 단물을 빨던 이들이, 정치 지형이 바뀌자 가장 먼저 등을 돌리고 배신의 칼날을 들이댄 모습은 인간성의 바닥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노선 변경이나 정치적 유연성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 권한을 사유화한 인륜의 붕괴이자 책임의 배신이다.

국회의원과 검사는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경력 관리자가 아니다.

이들은 공동체가 신뢰를 맡긴 공적 권한의 수호자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인과 특검 및 검사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참담하다.

권력을 향해 충성 경쟁을 벌이고, 필요할 때는 정의의 가면을 쓰며, 필요 없어지면 언제든 등을 돌리는 기회주의의 교본이 되고 있다.

이들에게 정의는 신념이 아니라 도구이며, 법치는 원칙이 아니라 거래 대상이 되고 있다.

◆ 성삼문, 패자의 편에 선 의리의 상징

이 지점에서 성삼문이 기억된다.

단종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성삼문은 권력의 승자가 아니었다.

그는 패자의 편에 섰고, 실패가 예정된 길임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역사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지킨 것은 권력이 아니라 의리였고, 법조문이 아니라 도리였으며, 생존이 아니라 인륜이었기 때문이다.

극형 앞에서도 성삼문에게 정의는 계산이 아니라 신념이었고, 충성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삶의 기준이었다.

◆ 오늘 특권 엘리트들의 비겁함

오늘의 특권 엘리트들이 성삼문의 용기를 흉내 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인륜과 책임감만 있었어도 권력의 향배에 따라 말을 바꾸고, 어제의 주인을 오늘의 적으로 몰아붙이는 추태는 없었을 것이다.

권력이 강할 때는 정의를 독점한 듯 오만하게 굴다가 바람이 바뀌면 가장 먼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정치가 아니라 비겁함이다.

국회의원과 특검 및 검사의 권위는 칼날의 날카로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를 절제하는 힘, 권력과 거리를 두는 용기, 그리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는 인륜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일부 특권 엘리트들은 권력과 한 몸이 되기를 선택했고, 그 순간부터 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필요 없어지면 또 다른 권력에 기대는 이 모습이야말로 빵점 인간성의 전형이다.

성삼문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 우리 앞에 서 있는 인륜의 기준이다.

성삼문에게 정의는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 신념의 문제였고, 충성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기준이었다.

권력에 빌붙어 정의를 훼손한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다.

“당신은 권력의 똥개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의인으로 기억될 것인가?
역사는 묻게 될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