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공판 출석하는 서훈·박지원·서욱
2020년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주요 인사들에게 26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2022년 말 기소된 지 약 3년 만에 1심에서 혐의를 벗었다.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에 위법성이 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판단은 절차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으로 나눠 진행됐다.재판부는 절차적 측면에서 실종 보고와 전파, 분석 및 상황 판단, 수사 진행과 결과 발표 과정에서 절차 위반이나 지휘 체계 미준수, 문서화 누락 등의 문제가 있다고 볼 만한 사정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내용적 측면에서도 피격과 소각 사실 은폐 의도나 월북 프레임 강요 정황을 인정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피격과 소각 사실을 보고받은 후 “사실을 확인해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릴 것”이라고 명확히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피고인들의 후속 조치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특수첩보 삭제와 회수 지시가 실제 이뤄졌으나 이를 은폐 의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조치들이 지휘 계통과 업무 절차를 따라 진행됐고 문서로 남아 있다며 검찰 주장이 대통령 지시를 피고인들이 어겼다는 뜻인데 이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월북 판단 관련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당시 군 첩보와 해경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한된 정보 속에서 나름의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설령 허위라 해도 섣부르거나 치밀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가능하나 미리 특정 결론을 정하고 이에 맞춰 회의나 수사를 진행한 정황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월북 판단과 발표 내용이 사실이 아닌 가치평가나 의견 표명에 불과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위 여부를 따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허위 입증을 위해서는 피고인들이 월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 증명돼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평균인 판단으로 볼 때 월북 시도 가능성을 쉽게 배제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국가 안보 관련 판단 과정을 섣불리 형사책임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지 않으면 책임자들이 사후 책임을 피하려 주저하거나 유보적 태도를 보이게 돼 사회 전체에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피고인들은 선고 후 잘못된 기소가 바로잡혀 다행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훈 전 실장은 입장문에서 지난 3년간 삶이 망가진 채 법정 싸움을 벌였으나 국가안보에 바친 삶이 부정당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박지원 전 원장은 취재진에 정치 공작으로 자신을 제거하려 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파면되고 감옥에 갔으나 자신은 무죄가 됐다며 정치 검찰과 국정원 개혁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이래진 씨
2020년 9월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유가족 이래진 씨가 26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장관 등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반면 고(故) 이대준 씨 형 이래진 씨는 판결이 황당무계하다며 변호사와 전문가들과 상의해 대응 방안을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2020년 9월 이대준 씨가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격된 후 정권 교체기인 2022년 6월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면서 본격화됐다.

감사원은 검찰 수사를 요청했고 국정원도 피고인들을 고발했다.

검찰은 2022년 12월 이들을 순차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