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국기가 펄럭이는 그린란드 수도 누크.사진=연합뉴스
유럽연합(EU)과 주요 회원국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대한 노골적인 통제 욕구를 드러내자 덴마크의 영토 주권 존중을 촉구하며 연대를 표명하고 있으나 강경 비난은 자제하는 온건 대응에 그치고 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5일(현지시간) EU가 국제 사회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회원국 영토 주권 위협에도 어조를 최대한 낮춘 채 대응하는 것은 EU의 딜레마를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협상이 진행 중이고 미국과의 무역전쟁 불씨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해 보복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 EU 집행위원회의 원론적 입장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파올라 피뉴 수석대변인은 “그린란드는 미국의 동맹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의 일원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통제권 언급과 베네수엘라 무력 개입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피뉴 대변인은 “전적으로 그린란드를 지지한다”면서도 베네수엘라 사태와 비교할 일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EU의 구체적 조치에 대한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피하고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 원칙을 “계속해서 수호할 것”이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독일, 영국, 프랑스,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 유럽 주요 국가들도 덴마크의 영토 주권 존중을 촉구하며 “그린란드의 미래는 다른 누구도 대신 결정할 수 없다”고 연대를 표명했으나 미국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은 하지 않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사진=연합뉴스
◆ 나토 내부 불안과 대안 의견
나토 역시 미국이 동맹인 그린란드를 베네수엘라처럼 무력 침공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이 그린란드 병합 필요성을 거듭 언급하자 내부 반발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에드 아널드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선임연구원은 “1949년 나토 창설 이래 회원국이 또 다른 회원국을 전면 공격한 사례는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위협이 나토 존립 자체에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안타깝게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원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덴마크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며 그린란드 역시 미국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며 미국이 동맹을 공격해 그린란드를 점령한다면 “나토의 종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토 내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야욕을 북극 지역 방위 역량 강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나토의 한 고위 외교관은 “그린란드 주변에서 동맹의 존재감을 강화하기 위해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며 “미국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작년 유럽 동부 전선과 발트해에서처럼 그린란드 주변에 군사 장비를 추가 배치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트럼프 대통령 주장과 유럽 반응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그린란드 도처가 러시아, 중국 선박으로 뒤덮여 있고 덴마크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며 “국가안보 관점에서 그린란드가 필요하고 EU는 우리가 그것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은 5일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이 그린란드 영토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북극 지역 러시아·중국 위협 인식에 일정 부분 공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했다”며 “이는 우리의 안보 이해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바데풀 장관은 조만간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이 사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북극권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광물 자원이 풍부한 지정학적 요충지 그린란드를 미국 51번째 주로 편입해야 한다며 군사력 동원 가능성까지 시사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