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기자의 코로나 일기] 3. 슬비 투병 일지 - 2022년 6월23일~6월26일
- 나의 자랑 나의 슬비
- 2022년 6월23일 23시에 기숙사 사감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슬비가 쓰러져 119타고 구미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고...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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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2 14:20 | 최종 수정 2023.01.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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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의 생전 모습.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과 아버지인 본지 이상훈 기자(오른쪽)는 부녀지간이 아닌 친구 같은 사이였다. (사진=더프리덤타임즈)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우리 딸이다. 태어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순간도 자랑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야말로 완벽한 딸이다.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의 딸로 세상에 나타나 준 자체가 자랑이었다. 어느 하나 빼어난 구석은 없었지만, 어느 하나 모자란 구석도 없는 아이였다.
나의 딸이기에, 우리의 딸이기에 항상 자랑스러웠고 사랑스러웠다. 어릴 적 슬비는 사랑이 가득한 아이였다. 우리 부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밝고 명랑하면서도 평범한 아이였다. 중학교에 진학해 축구를 좋아하게 되어 시험 기간에도 새벽까지 EPL, LALIGA를 즐겨보던 그런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외국어고등학교를 가겠단다. 성적이 중상 정도였는데 반대라기보다 어려움을 걱정했다. 하지만 결국 경북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말았다. 우리 부부는 뛸 듯이 기뻤다. 평범한 슬비도 우리 부부의 자랑이었는데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처음으로 기숙사에 데려다 놓고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힘들었던 기억이다. 2주에 한 번씩 귀가하고 귀교시킬 때마다 너무 섭섭하고 안타까움에 속을 태워야 했다.
꼴지를 해도 괜찮으니 스트레스받지 말고 묵묵히 하나씩 만들어보라고 했다. 공부에 너무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랐고 학창 시절을 즐기길 바랐다. 시험 기간에도 쉬엄쉬엄하라고 했고 1년에 1등급만 올려보라고 했다. 귀가 때마다 둘이서 저녁을 먹으며 교우관계에 조언을 해줬고 스스로 알아서 하길 권했다. 우리 부부의 걱정과는 달리 잘 적응하고 무척이나 잘 해나가고 있었다. 학생부와 동아리에 가입해 리더쉽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작은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빠가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인간관계에 대해 조언해주며 잘 처신하길 권했다.
나는 항상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길 원했다.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같이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드라이브도 다녔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부녀지간이라 생각했다.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과 아버지인 본지 이상훈 기자(오른쪽).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은 경북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사진=더프리덤타임지)
그러던 어느 날 밤(22.06.23 23:00)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슬비가 쓰러져 119타고 구미에 있는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너무도 현실과 동떨어진 소식에 놀란 나는 튕기듯 일어나 바로 구미로 향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빗줄기를 뚫고 구미에 도착하니 이미 의식 없이 응급실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누워있었다.
도착 직전 경련이 일어나 CT를 찍었다고 했다. 응급실 의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런 것 같다고 별문제가 없을 거라 했다. 슬비 앞에 앉아 잠시도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밤을 지새웠다. 새벽녘(22.06.24 03:30) 잠시 의식이 돌아오는 듯했다. 의사가 여기가 어디냐 물으니 응급실이라 한다. 이름을 물으니 대답이 없고 계절을 물으니 여름이라 대답했다.
다행히도 신체와 인지능력은 이상이 없어 보여 순간 안심을 했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보길래 아빠가 왔다고 얼른 집으로 가자고 하는 순간 슬비의 얼굴에 경련이 있어 보였다. 내 딸이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의사는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였고 내가 경련이라 말하자마자 슬비의 눈과 입, 턱, 혀가 돌아가며 경련이 심해졌다.
의사는 멈칫하더니 약 투여를 지시했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슬비가 혀를 물지 않도록 도왔다. 간호사들이 몰려와 기관지에 튜브를 삽입하는데 내 마음이 너무 겁이 나고 급해지니 너무 어설퍼 보였다. 대구로 옮겨 달라 요청했지만, 응급의학과 의사는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그럼 포항이라도 알아봐 달랬더니 알았다는 말 뒤로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응급실에는 약 7~9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었다. 경련하면서 소변을 봐 옷과 이불이 다 젖었는데도 아무도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추워 덜덜 떨고 있어 이불을 달라고 했지만 없다는 대답밖에 듣지 못했다. 오전 8시쯤이 되니 새로운 간호사들이 교대하러 왔고 그제서야 한 간호사가 소변 때문에 다 젖은 거 몰랐냐고 물티슈와 기저귀를 사 오라고 했다. 나는 즉시 사와 간호사와 함께 옷을 갈아입히고 마른 이불을 덮어주었다. 슬비는 그제야 편하게 잠이 들어 보였다. 나는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의 무관심 때문에 잠시도 슬비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심지어 신체 반응을 보기 위한 장치들이 몸에서 떨어져 심박, 맥박이 표시되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상관없어했다. 그래서 내가 붙여줬다. 몰랐던 게 아니다.
오전 8시를 조금 넘기자 신경과 의사가 왔다. CT는 이상 없으니 입원해서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나는 미련 없이 포항으로 이송해달라 요청했다. 대구는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니 일단 포항으로 가서 중환자실에 입원시키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다행히 세명기독병원 중환자실에 자리가 있대서 빨리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그 시간이 8시 30분인데 슬비는 11시 30분에야 구급차를 탈 수 있었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한심해 보였다.
포항으로 옮겨 2시간 만에 중환자실로 옮기고 MRI와 뇌척수액검사를 실시했다. 경련 때문에 항경련제를 계속 투여하고 있었고, 뇌염을 의식해 결과가 나오기 전 선제적으로 항생제를 투여했다고 한다. 오후 늦게 MRI에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다고 했고 뇌염일 가능성이 있어 뇌척수액 검사 결과를 봐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항경련제로 안정되게 자고 있다고 했다. 구미보다는 훨씬 빠른 진행이다. 또한 수시로 나와서 환자의 상태를 알려주고 안심시키려 애썼다. 응급실 또한 수시로 바이탈을 체크한다.
일단 집으로 와 잠을 청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듯해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음날(22.06.25) 오전 9시경 병원에서 의사와 면담하니 뇌척수액검사에도 큰 이상은 없는 것 같고 세균성보다는 바이러스성 뇌염 같다고 했다. 세균성 뇌염은 치사율도 높고 예후도 좋지 않은데 다행이라 했다. 그리고 밤새 경련을 두 번 정도 했다기에 상급병원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대구 쪽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또 한다. 대구 쪽이 어려우면 울산도 괜찮다고 하는데 경대나 동산병원으로 알아봐 달라고 했다. 서울 쪽은 이동시간이 너무 길어 무리였다. 일단 상급종합병원으로 가서 처치해야 한다는 판단이고 그 후 서울로 옮겨 치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응급실 대기는 오히려 더 위험해 보였다. 대구를 가더라도 바로 중환자실로 갈 수 있어야 한다.
마침 대학 후배가 떠올랐다. 공대 후밴데 자퇴하고 다시 의대에 진학한 후배다. 부산대 의대 출신이라 혹시 몰라 부산대병원을 알아봐 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마침 바로 전화가 왔다. 대구 경대병원에 친구가 있는데 이야기해보겠다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알려 달란다. 그 후배 친구가 마침 신경외과 교수였다. 얼마 후 자리를 마련해줄 테니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세명기독병원 의사로부터 칠곡 경대병원에서 받아준다고 했다고 알려왔다.
그 즉시 나는 수납하고 집사람이 먼저 슬비와 구급차로 이동해 경대병원 응급실(22.06.25 11:00)로 옮겼다. 여기서도 기다림이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슬비는 점점 악화되는지 가래 때문에 호흡이 힘들어 보였다. 한 시간여를 기다리니 후배 친구인 신경외과 교수가 왔다. 몇 가지 묻고 아이의 상태를 보더니 슬그머니 가버린다. 또 30여 분을 기다리니 기도삽관하고 중환자실로 옮긴단다. 그 한 시간 반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교수님은 학회 중에 슬비를 봐주러 오신 거였다.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그렇게 중환자실로 옮겨놓고 또 기다림이다. 주말이라 의사들이 없나 보다. 하염없는 기다림 속에서 애간장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주치의가 아이가 숨쉬기 힘들어하고 이산화탄소가 쌓이고 가래도 많이 차니 인공호흡기를 달자고 했다. 당연히 의사의 말을 듣는 건데도 매번 동의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래도 후배 친구가 주치의라 본인이 먼저 시술하고 동의서는 나중에 써주면 된다고 했고 시술도 본인이 직접 하시겠다고 안심시켰다.
우리가 옆에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슬비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된 것 같아 집으로(22.06.25) 향했다. 씻고 짐도 챙겨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서 동의서와 패드가 필요하니 오라고 한다. 그래서 바로 출발해 다시 병원으로 와서 필요한 것 사주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22.06.26) 짐 챙겨 9시쯤 병원으로 왔다. MRI, CT, 뇌척수액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안 보인다고 했다. 문제를 찾아야 치료를 하는데 문제가 뭔지를 모르니 답답하다고 한다. 내일 월요일에 신경과로 이관하고 다양한 검사와 치료하게 된다고 한다. 일단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고 잠을 청했다.
(다음 편(2022년 6월27일~6월30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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