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30년, 아테네에 전염병이 창궐했고 전력을 상실한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패배하고 말았다. 벨기에 출신 화가 미첼 스위츠(Michiel Sweerts)의 작품 ‘아테네의 역병’.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캡처)


지금으로부터 약 2천500년 전 아테네에서는 인구의 1/4이 사망할 정도로 무서운 역병이 발생하였다. 당시 역병에 걸렸다가 살아남은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전쟁과 전염병이 휩쓸었지만, 이 시대의 아테네는 패리클래스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이끌었고 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활약하였으며, 소포클래스는 오이디푸스 왕이라는 비극을 만들어 무대에서 공연했을 만큼 정치 문화적으로 전성기였다. 2천50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이름이 널리 전해진 위대한 인물이 모두 역병의 시대에 나왔다는 것은 경탄할 일이다.

소포클래스는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 중 하나로,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오이디푸스 왕’은 아테네 역병이 발생한 지 1년 후인 기원전 429년,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극은 역병이 돌던 테베가 무대다. 오이디푸스 왕은 이렇게 탄식하며 등장한다.

“내 아들들이여, 오래된 카드모스의 새로 태어난 자손들이여, 어인 일로 그대들은 이 제단 가에 탄원자들로 앉아 있는 것인가? 온 도시가 향을 태우는 연기와 구원을 비는 기도와 죽은 자들을 위한 곡소리로 가득하구나.”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왕국에 역병이 돌고 있음에 탄식하고는 아폴론 신전으로 처남인 크레온을 보내 역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신탁을 받아오라고 보낸다.

신탁을 받고 돌아온 크레온이 왕에게 이렇게 고한다.

“포이보스 왕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하셨소. 이 땅에서 길러진 나라의 더러움을 몰아내야 한다고.” 포이보스 왕은 아폴론의 다른 이름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더러움”이 역병의 원인이라는 신탁을 듣고,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몰아내겠다고 결의하며 수사에 착수한다.

오이디푸스는 성실하고 진실한 왕이었다. 테베의 사제가 오이디푸스에게 통치자가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그대가 지금 통치하고 있듯이 앞으로도 이 나라를 다스리고 싶다면 텅 빈 나라가 아닌 사람들을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성 안도 텅 비고 배 안도 텅 비어 아무도 함께할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 내 마음도 나라와 나 자신과 백성들 모두를 위해 비탄해 하고 있소. 나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고, 수많은 길 가운데에서 가야 할 길을 찾고 있소이다.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를 찾아 이미 실행에 옮겼소이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장 앙투안 테오도르 기루의 ‘테세우스를 만난 오이디푸스와 두 딸’(1788, 유화). 미국 댈러스 미술관 소장.


오이디푸스 왕은 테베의 전왕인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처벌해야만 더러움이 정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찾는 수사를 하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눈먼 예언자 테레시아스에게 여러 차례 범인을 물었으나 뜻 모를 수수께끼 같은 대답만 하였다.

오이디푸스는 집요하게 추궁하여 그의 입에서 “그대가 바로 그대가 찾고 있는 범인이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분노하며 이는 분명 음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처남 크레온과 다툼을 벌인다. 그때 아내 이오카스테가 싸움을 말리기 위해 무대 위에 오른다. 그리고는 오이디푸스에게 더 이상 수사를 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통치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아내의 부탁을 뿌리치고 수사를 계속한다.

오이디푸스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죽일 아들”이라는 예언에 의해 버려져 다른 나라에서 키워졌는데, 자신을 키워준 사람이 친부가 아님을 알고 집을 나와 방랑하다가 어느 갈림길에서 시비가 붙어 한 남성을 살해하게 된다. 그가 바로 아버지 라이오스였다. 한편 오이디푸스는 테베를 괴롭히고 있던 괴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를 구한 영웅이 되어, 과부가 된 테베의 왕비와 결혼하게 되는데 그 왕비가 자신의 어머니 이오카스테였던 것이다.

이오카스테는 자신이 아들과 결혼하였고, 이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으며, 아들과의 사이에서 4남매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침실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이오카스테의 죽음을 보고 마침내 모든 것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울부짖는다.

“아,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모든 것이 사실이었구나! 오 햇빛이여! 내가 너를 보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이기를! 나야말로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에게서 태어나서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결혼하여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구나.”

나라에 전염병을 퍼뜨린 ‘더러움’이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오이디푸스는 망설임 없이 죽어 쓰러져 있던 이오카스테 가슴에 달린 브로치를 뽑아 두 눈을 찌른다.

오이디푸스는 진실하고 책임감 있는 왕이었다. 역병의 원인인 ‘더러움’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더러움이 바로 자신임을 밝혀냈다. 아버지를 죽인 것은 젊은 시절의 실수였을 뿐이고 목격자의 입만 다물게 하면 될 테니 문제 될 것 없다는 원로원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자신을 응징함과 동시에 ‘더러움’을 처단했다.

그는 아내 이오카스테의 장례와 자식들을 처남 크레온에게 맡기고 자신이 통치하던 왕국에서 자신을 추방하여 통치자로의 사명을 다하고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방랑길을 떠난다.

소포클레스 두상


소포클레스는 아테네 역병을 자연적으로 발생한 재난으로 보지 않고, 운명적 패륜을 저지른 인간의 더러움에 의해 생긴 사회 정치적 사건으로 보았다. 아테네 역병뿐 아니라 이후에 발생한 모든 역병이 사회 정치적 혼란기에 발생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소포클래스의 견해는 전적으로 옳다. 그뿐 아니라 역병은 국가의 흥망, 르네상스, 종교개혁, 신대륙의 발견, 세기의 전환 같은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동하였다.

코로나 범유행도 다르지 않다. 미·중 패권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자유무역 시대의 종식과 보호무역 및 각자도생 시대로 정의된 현시대에 발생했다는 것은 이전의 역병이 가졌던 사회 정치적 혼란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블록체인,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의 4차 산업 혁명은 물론이고, 바이오보안, 백신여권 등의 범국제적인 통제가 보편화되는 뉴노멀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판데믹은 2천500년 전 소포클레스가 원인으로 지목했던 “더러움”뿐 아니라 사악함도 한몫한다. 세월호 참사, 대통령 탄핵, 편향된 인사, 전직 고위 관료에 대한 숙청과 정치보복, 의문사와 자살자 속출, 국회의원의 갈취, 특혜, 편법, 성추문은 코로나 이전에 한국에 만연한 더러움이었다. 코로나가 터지자 더러움은 사악함이 되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추적 감시가 시작되었으며 그것을 K방역으로 홍보하였다. 백해무익한 백신을 집단면역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에게 접종하였다. 백신 접종 후부터 확진자도 사망자도 증가하였지만, 방역당국은 접종을 멈추지 않았다. 백신패스라는 폭압적인 정책으로 수많은 자영업자가 폐업하였으며, 유아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얼굴을 잃었고, 전국의 화장장에는 사망자가 밀려 화장을 위해 5, 6일을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온 국민이 자동기계처럼 방역에 복종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최고의 감염률과 최고의 초과 사망률이었다.

권력이 저지르는 가장 사악한 범죄는 인간을 정신적, 육체적, 법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방역 당국은 하루도 빼지 않고 두려움을 유발하는 방송을 하였고 각종 포고문을 곳곳에 배치하여 국민 의식의 자유를 빼앗아 국민을 정신적으로 지배했고, 마스크와 백신으로 육체적으로 지배했으며, 백신 희생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게 만들어 법적으로 지배하였다.

이렇게 암울한 시대를 만든 한국의 오이디푸스들은 설사 운명이 자신을 오이디푸스로 만들었다 해도 오이디푸스 왕처럼 진실하고 책임 있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운명적인 더러움과 사악함을 덮으려 하지 말고 용기 내어 드러내고 국민의 심판을 받기 전에 스스로를 심판하여 양심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영혼의 자유를 얻어야 한다. 통치자로서, 정치인으로서 사명을 다한다면 그때 희생자의 원혼, 유가족의 한탄, 단절되고 소외된 개인, 그리고 유사 과학이 만든 이 시대의 암울함이 물러나게 될 것이다.

오순영 칼럼리스트 / 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