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한 건설 현장(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사진=연합뉴스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김정은 정권의 외화벌이 명목 아래 엄격한 감시와 통제 속에 노예와 다름없는 처우를 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실태가 영국 비비씨(BBC,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방송의 12일(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비비씨(BBC)가 입수한 탈북 북한 노동자 6명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러시아 내 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 등지에서 하루 18시간의 고된 작업에 투입되며, 파견 기간 동안 현장을 벗어나기조차 어려운 것으로 밝혀졌다.
BBC 보도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의 일상은 오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이어지는 강도 높은 노동의 연속이다. 이들은 1년 동안 단 이틀만 휴식을 취하며, 비좁은 화물 컨테이너 등에서 합숙 생활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보안 당국 관계자들은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자유를 극도로 제한한다. 외출은 한 달에 단 한 번만 허용되며,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 5명씩 조를 짜서 나서야 한다. 이는 2023년부터 감시가 강화된 조치로, 이전 2명씩의 외출 통제보다 더욱 심해진 것이다.
북한 노동자의 해외 취업은 2019년 유엔(UN, United Nations)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Security Council) 결의에 따라 전면 금지된 대북 제재 위반에 해당한다. 그러나 러시아로 파견되는 북한 노동자의 수는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북한 노동자가 재건작업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러시아 쿠르스크지역.사진=연합뉴스
한국 정보 당국이 BBC에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북한 노동자 1만 명이 러시아에 파견되었으며, 북한과 러시아가 관계를 강화한 올해에는 그 수가 5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정부 통계에서도 지난해 러시아로 입국한 북한 주민은 전년 대비 12배 폭증한 1만3천 명에 달했으며, 이들 대다수는 유엔(UN)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로 '학생 비자(Visa)'를 통해 입국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북한 노동자들이 현지에서 고된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월 100달러에서 200달러(약 13만원에서 26만원)에 불과하다. 이들은 소득 대부분을 북한 정권에 '충성 수수료' 명목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BBC는 노동자들이 즉시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은 술이나 담배를 살 용돈 정도로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귀국 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처리되지만 이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 북한 노동자는 '국가에서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동안 번 돈을 받지 못하게 되자 목숨을 건 탈주를 감행했다.
2012년 건설 중 붕괴한 블라디보스토크 교량. 당시 북한 노동자 2명이 다쳤다.사진=연합뉴스
'태'라는 가명으로 BBC 인터뷰(interview)에 응한 한 탈주 노동자는 중앙아시아(Central Asia) 출신 러시아 노동자들의 작업량이 북한 파견자의 3분의 1 수준임에도 임금은 5배에 달한다는 것을 알고 "수치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 현지에서 '노예'라는 조롱을 당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는 용돈을 모아 몰래 구입한 중고 스마트폰(smartphone)을 통해 한국 노동자들의 평균 수입을 파악한 후 탈출을 결심했고, 결국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망명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 당국은 탈출 방지를 위해 파견 노동자들의 자유를 더욱 억압하고 있으며, 이러한 통제 강화는 최근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 정부는 러시아를 탈출하여 한국으로 입국하는 북한 주민의 수가 최근 연간 10명 정도로 과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BBC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