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금시설에서 면담 기다리는 관계사 직원들
7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앞에서 관계사 직원들이 면담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불법 체류 단속으로 구금되었던 300명이 넘는 한국인 근로자들이 조만간 석방될 예정이지만, 기업들은 이번 사태의 여파가 장기간 광범위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묵인되던 출장 및 근무 형태가 사실상 차단된 데다, 민감한 관세 협상 중에 대규모 단속이 이루어지면서 한미 관계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다.

8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기업들은 기존의 미국 출장 관행을 점검하고 제도적 보완책 마련에 착수했다.

엘지(LG)에너지솔루션은 고객 미팅을 제외한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하고, 현재 출장 중인 임직원들에게는 즉시 귀국하거나 숙소에서 대기할 것을 지시했다.

현대차 역시 당분간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국 출장을 보류했으며, 미국 주재원들의 비자 적법성을 재점검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미국 비자 종류별 업무 가능 범위에 대해 법무법인에 자문을 요청하는 등 엄격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에 진출한 한 기업 관계자는 이번 일을 '예방 접종'에 비유하며, 앞으로 모든 미국 출장을 완전히 원칙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이민단속 구금 사태 대응 위해 출국하는 LG엔솔 인사최고책임자
미 이민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공장에서 벌인 불법체류자 단속에서 300명이 넘는 한국인이 구금된 가운데 지난 7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LG에너지솔루션 김기수 인사최고책임자가 현장 대응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
구금 인원 중 LG에너지솔루션 소속은 47명(한국 국적 46명·인도네시아 국적 1명)이고, HL-GA 배터리회사 관련 설비 협력사 소속 인원은 250여명으로 파악됐다.사진=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상징인 1천500억 달러 규모의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 조선업계의 사업 추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마스가는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의미의 이니셜이다. 당장 대규모 설비 공사는 없으나 기술 협력이나 현지 사업 조율을 위한 소규모 출장이나 주재원 파견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화오션 관계자는 적법한 비자를 발급받은 인력 외에는 추가 조치 없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한미 간 비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당분간 미국 내 사업에 소극적인 분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어제 대통령실은 "산업통상자원부 및 관련 기업과 공조하여 대미 프로젝트 관련 출장자의 비자 체계 점검·개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대 1만5천 개에 달하는 한국인 전문인력 취업 비자(E-4) 신설 법안이 10년 넘게 미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 제도 개선 시점은 불투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조선, 배터리, 컴퓨터 등 산업에 필요한 한국 인력을 미국으로 불러오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미국이 자체 산업 육성을 위해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한 만큼 비자 제도 개선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와 반이민 정책 기조를 고려할 때 유사 사례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일부 기업 관계자는 "미국이 공장 건설을 무기한 중단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을 계기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지지층을 위한 무리한 단속 이후 국내외 비판을 의식해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발언과 현장 분위기의 괴리가 기업의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향후 미국으로 보낼 인력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구금된 인력들이 미국 입국에 불이익 없는 자진 귀국 형식으로 돌아오는 방안이 추진 중이지만, 현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직접 목격한 상황에서 누가 불안감 없이 미국 출장을 가겠는가"라며 향후 인력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편 구금된 인력들은 미국 내 행정 절차를 마친 뒤 오는 10일 전후로 귀국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들을 위한 전세기는 엘지(LG)에너지솔루션이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