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정부의 소셜미디어(SNS) 접속 차단 조치와 만연한 부패에 격분한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자, 샤르마 올리 총리가 결국 사임했다.
시위대가 대통령과 총리의 자택에 불을 지르고 국회 의사당에 난입하는 등 과격 양상을 보이면서 사태 해결을 위해 행정 수반이 물러난 모양새다.
로이터 통신은 9일 올리 총리가 총리직에서 물러났다고 그의 보좌관인 프라카시 실왈을 인용해 보도했다.
올리 총리는 람 찬드라 포우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만연한 비정상적 상황을 고려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촉진하기 위해 헌법에 따라 총리직에서 사임한다"고 밝혔다고 네팔 영문 일간지 히말라얀 타임스가 전했다.
포우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올리 총리의 사임서를 수리하고 새 총리 선출 절차에 착수했으며, 지난해 7월 4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한 올리 총리는 1년 2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의원내각제인 네팔에서는 총리가 행정수반으로서 실권을 갖고, 대통령은 의전상 국가원수직을 수행한다.
이날 사임 의사를 밝히기 전 올리 총리는 전날 시위 중 발생한 19명의 대규모 인명 피해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그는 전날 심야 성명에서 "정부는 SNS 사용을 중단하길 원치 않으며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할 것"이라면서 "원인을 규명하고 향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보름 안에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라메시 레카크 내무부 장관 등 장관 4명도 이번 시위와 관련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고 스페인 이페(EFE) 통신이 보도했다.
시위대는 수도 카트만두에 내려진 통행금지령을 무시하고 이날도 총리실 인근에 모여 정부를 규탄했으며, 국회 의사당에 난입하기도 했다.
에스엔에스(SNS)에는 카트만두 시내와 인근 지역에서 시위대가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자택을 공격하는 영상이 공유됐으며, 포우델 대통령과 레카크 장관의 자택을 비롯해 아르주 라나 데우바 외무부 장관의 아내가 소유한 사립학교도 불에 탔다고 에이피(AP)통신이 전했다.
이날 오후에는 올리 총리 자택도 시위대 방화로 불에 타 검은 연기가 퍼지는 영상이 현지 매체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퍼졌다.
시위 사태로 카트만두 공항도 폐쇄됐다고 네팔 항공 당국은 밝혔다.
이번 시위는 네팔 정부가 지난 5일부터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엑스(X, 구 트위터) 등 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26개 에스엔에스(SNS)의 접속을 차단한 데 반발해 일어났다.
에이피(AP) 통신은 네팔 정부의 에스엔에스(SNS) 차단 조치는 온라인 공간에서 이용자들의 발언을 제한해 인터넷 자유를 위축시키는 현상의 일부라고 보도했다.
아디티야 바시슈타 미국 코넬대 조교수는 "네팔에서 벌어지는 일은 (온라인에서) 이야기와 서사를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부패 척결과 경제 성장에 소극적인 정부에 실망한 젊은 층이 대거 시위에 가담했으며, 주최 측은 '제트(Z)세대 시위'라고 주장했다.
올리 총리가 이끈 통합마르크스레닌주의 네팔공산당(CPN-UML)과 네팔회의당(NC) 좌파 연립정부는 부패를 척결하고 경제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네팔 당국에 등록해 이번 차단 대상에서 제외된 틱톡에서는 사치품과 호화로운 휴가 생활을 과시하는 고위층 자녀들의 모습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대조하는 영상이 빠르게 공유되기도 했다.
시위대 수만 명은 전날 카트만두에서 "소셜미디어가 아닌 부패를 척결하라"는 구호를 외쳤고, 일부는 경찰 바리케이드를 뚫고 의회 난입을 시도하거나 구급차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비롯해 물대포와 고무탄을 쏘며 진압을 시도했으며, 네팔 남동부 비라트나가르와 네팔 서부 포카라 등지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잇따라 모두 19명이 숨지고 500명 넘게 다쳤다.
네팔 정부는 대규모 시위가 유혈 충돌로 번지자 문제가 됐던 에스엔에스(SNS) 접속 차단 조치를 이날 철회했다.
프리트비 수바 구룽 네팔 정부 대변인 겸 통신정보 기술부 장관은 "에스엔에스(SNS) 차단 조치를 철회했다"며 "(현재)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네팔은 239년 동안 지속된 왕정을 폐지하고 2008년 연방공화국이 됐으며, 이후 이번까지 14차례나 총리가 바뀔 만큼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