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원내대표 한자리에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어렵게 머리를 맞대 도출했던 여야 간 3대 특검(김건희·내란·순직해병)법 개정안 수정 합의가 불과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전격적으로 깨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0일 합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법안을 밀어붙인 행태는 정치적 신뢰를 바닥으로 추락시킬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마저 위협하는 파괴적인 선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미래 지향적인 협치를 외면하고 당내 강경파의 논리에 갇혀 국가적 책임을 저버린 명백한 행위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인력 증원을 골자로 한 특검법 개정안과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에 야당인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합의를 저버리고 일방적으로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표결에 불참한 채 국회 회의장 밖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장외 투쟁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이러한 여야의 극한 맞대결 속에 문신사법 등 비쟁점 민생 법안 38건의 처리 시점은 기약 없이 미뤄졌고, 이재명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과 맞물린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 처리 역시 수개월 지연될 전망이다. 이는 정치적 신뢰 훼손을 넘어 국민의 민생과 직결된 법안 처리까지 마비시키는 무책임한 행태이다.

당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일 저녁까지만 해도 야당인 국민의힘의 요구를 수용하여 3대 특검 수사 기간 추가 연장 없이 수사 인력 증원도 최소화하는 내용의 수정안에 합의한 바 있다. 그 대가로 국민의힘은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 처리에 협조하기로 했었다. 정무위원회 소관인 해당 법안은 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이라 정무위원회 통과가 1차 관문으로 여겨졌다. 만약 국민의힘이 해당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더불어민주당은 패스트트랙(fast track)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 경우 내년 3월 이후에나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렇듯 특검 수사 연장을 원치 않는 국민의힘과 금융감독위원회 설립 일정을 지키고자 하는 더불어민주당 간의 협치 시도는 더불어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과 강성 지지층의 반대에 밀려 불과 하루 만에 물거품이 됐다. 이 과정에서 여야 합의를 주도했던 김병기 원내대표를 향해 정청래 대표가 '재협상 지시'를 내렸고,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청래 대표가 공개 사과하라"고 직격하는 등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투톱 갈등'까지 노골적으로 표면화되는 추태를 보였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통해 국민의힘 요구 사항 중 일부만 수용한 특검법 재수정안을 마련했고, 이를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정청래 대표는 본회의 후 자신의 에스엔에스(SNS, Social Networking Service)에 "민심을 이길 자는 없다. 내란 청산은 멈출 수 없는 시대정신"이라고 적어 강경 입장을 유지했다.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가 하루 만에 휴지 조각이 된 것에 강력히 반발하며 규탄대회를 열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본회의에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협치를 말해서 김병기 원내대표가 드디어 협치를 실천하나보다 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약속을 파기하는 건 대국민 사기"라며 "향후 국회 일정과 관련해 벌어지는 모든 파행에 대해선 전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과 관련해 "민주공화국을 '민주당공화국'으로 만든 파괴의 100일로 평가하겠다"고 혹평하며 이재명 정부가 '반경제·반자유·반민생·반민주 정권'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의힘은 장외 투쟁 카드까지 거론하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정당 간 합의가 불과 하루 만에 번복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정치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은 물론, 대의민주주의의 작동 방식 자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심화시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사태를 통해 책임 있는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망각하고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국민은 이러한 정치 불신의 조장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