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검서 공개된 코카인 600㎏
지난 8월6일 오전 부산지검 대회의실에서 지난 5월 부산신항에 입항한 선박의 컨테이너에서 압수된 600㎏ 규모의 코카인 밀수입 사건에 관한 브리핑이 진행 중이다. 부산지검과 부산세관은 부산항의 역대 최대 규모 마약류 적발이라고 설명했다.사진=연합뉴스
마약 투약 사범 열 명 중 다섯 명 이상이 치료나 교육 등 어떠한 조건 없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사회로 복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처벌 중심의 현재 정책이 마약 재범률을 낮추는 데 한계를 보이면서, 보호관찰관의 감독 아래 치료와 재활을 강제하는 통합 관리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2일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의뢰로 수행한 '마약류 중독 치료·재활 유관기관 역할 재정립 및 연계 방안 마련'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전체 마약류 투약 사범 8천489명 중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인원은 4천718명으로 전체의 55.6퍼센트(%)에 달했다.
더욱이 이들 중 3천165명(37.3퍼센트(%))은 특별한 조건 없이 기소유예를 받아 사실상 아무런 제재나 치료적 개입 없이 사회로 복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치료를 조건으로 기소유예를 받은 인원은 단 14명(0.2퍼센트(%))에 불과했으며, 보호관찰소의 관리를 받는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는 281명(3.3퍼센트(%)), 교육 이수를 조건으로 한 경우는 1천258명(14.8퍼센트(%))에 그쳤다.
[그래픽] 마약 사범 검거 추이
지난 3월16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SNS나 가상자산 등에 접근성이 좋은 10대∼30대 마약류 사범의 비율이 지난해 63.4%로 전년 대비 5.6%포인트 증가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6월 30일까지 15주간 마약·보이스피싱 등 주요 민생범죄에 대해 상반기 집중단속에 나섰다.사진=연합뉴스
보고서는 이러한 현상이 마약 중독을 질병이 아닌 단순 범죄로만 취급해 온 현재 사법 시스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마약 사범의 재범률은 최근 오 년간 꾸준히 30퍼센트(%)를 넘어선 상태다.
현재 우리나라의 마약 중독 관리 시스템은 보건의료, 형사사법, 약물 관리라는 세 개의 축으로 나뉘어 각기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치료를 담당하는 병원, 처벌을 결정하는 검찰, 교육을 맡은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환자 중심의 통합적이고 연속적인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연구진은 '보호관찰 치료 조건부 기소유예(가칭)' 모델 도입을 제안했다.
이 모델은 보호관찰관에게 컨트롤타워 역할을 부여하여, 마약 사범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으면 보건복지부 산하 전문가위원회가 중독 수준을 평가해 개인별 맞춤 프로그램을 설계하도록 한다.
이후 대상자는 보호관찰소에 등록되어 보호관찰관이 지역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와 연계하여 전문 의료기관에 배정하고 치료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불시 약물검사를 통해 재발을 감시하고, 치료를 중도에 포기할 경우 기소유예를 취소하는 등 강제력을 동원해 치료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치료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마약 중독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병원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지역사회 재활을 담당할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역시 인력과 시설이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장기적으로 전체 기소 유예자 4천718명을 이 모델에 따라 관리할 경우, 입원 및 외래 치료비로 연간 약 510억 원, 보호관찰관 및 중독관리 전문인력 충원에 약 102억 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보고서는 마약을 단순 범죄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대전환을 촉구하며, 처벌에만 의존하는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 사법, 치료, 재활이 연계된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