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치매 환자가 약 97만 명에 육박하며 내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21일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어리석다'는 뜻이 담긴 현행 '치매(癡呆)' 용어를 바꾸자는 논의에 다시금 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
보건복지부 등 관계 당국에 따르면, 현재 22대 국회에는 법률상 '치매'라는 용어를 '인지저하증', '뇌 인지저하증', '인지증', 또는 '신경인지장애' 등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치매관리법 개정안' 4건이 발의되어 있다.
이처럼 용어 변경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는 것은, 치매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가 환자와 가족에게 깊은 수치심을 안기고, 나아가 조기 발견과 적기 치료를 저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치매'는 다양한 원인의 뇌 손상으로 인해 기억력, 언어능력, 판단력 등 여러 인지 기능이 저하되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상태를 의학적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한자로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 자를 사용하면서, 질병 자체보다는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심화하는 주된 요인이 되어 왔다. 이에 따라 법안들은 보다 가치 중립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로 명칭을 변경함으로써,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 부담을 경감하고 사회 전체의 인식 개선을 도모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정부 역시 "치매란 용어는 부정적 인식과 사회적 편견을 유발하므로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며 용어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에는 보건복지부 주도로 전문가와 환자 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치매용어 개정협의체'가 운영되기도 했으나, 실제 법률 개정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던 아쉬움이 있다.
당시 협의체는 대체 용어 후보군으로 '인지저하증'과 '인지병'을 꼽았는데, '인지저하증'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국민에게 친숙하다는 평가를, '인지병'은 용어가 간결해 사용하기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용어 개정에 대한 신중론도 존재한다.
대한치매협회는 '인지저하증'이라는 단어에도 '저하'라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 치매 명칭 변경의 근본적인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다.
또한 대한의사협회는 용어 변경의 취지에는 일부 공감하면서도, 기존 의료 용어와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미 해외에서는 부정적 인식을 줄이기 위해 치매 용어를 변경한 선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치매'를 '뇌인지저하증'으로, 대만은 '실지증'으로, 중국과 홍콩은 '뇌퇴화증'으로 각각 변경했으며, 미국은 정신질환 분류 기준에서 '치매(Dementia)'를 '주요 신경인지장애'로 대체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해외 사례는 용어 개정이 환자와 사회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치매 진료 환자는 70만9천620명에 달하여 2020년 56만7천433명 대비 25.1%나 증가했다.
이처럼 치매 환자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단순히 질병의 명칭을 바꾸는 것을 넘어 환자와 가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이 질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함께 사회적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률상 용어가 바뀌면 치매안심센터와 같은 관련 기관의 명칭, 그리고 각종 정부 사업명 역시 변경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국회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돌봄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 치매 용어 개정 논의를 사회적 합의로 이끌고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건강한 생활 습관, 정기적인 건강검진, 가족·친구와의 소통, 치매 조기 검진 등 질병 예방을 위한 노력이 사회적 편견 해소와 맞물려 더욱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