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급여 (PG).사진=연합뉴스

매년 4조 원이 넘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아이를 잘 키우라'는 명목으로 가정에 지원되고 있지만, 이 돈이 본래 취지와 달리 은행의 예·적금 상품으로 묶이는 '현금 퇴장' 부작용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저출산 시대 양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된 첫만남이용권, 아동수당, 부모급여 등 현금 지원 제도가 정책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아동 양육 가구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건강한 성장 환경을 조성한다는 목표 아래 현금성 지원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올해 아동수당과 부모급여에 책정된 예산만 해도 무려 4조941억 원에 달한다.

특히 8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 원씩 지급되는 아동수당과, 0~1세 영아에게 월 50만~100만 원이 지원되는 부모급여는 양육 가구에 큰 도움이 되어왔다. 법적으로도 보호자는 이 돈을 아동의 권리와 복지 증진을 위해 사용해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막대한 재원이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은행으로 흡수되는 '현금 퇴장'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아동수당 제도가 시작된 이래 시중 은행들은 앞다투어 관련 우대 적금 상품을 출시했으며, 부모급여 역시 마찬가지로 은행 상품으로 유도되는 경향을 보였다.

심지어 금융감독원(금감원)은 특정 은행의 '부모급여 우대적금' 상품을 '상생·협력 금융 신상품' 우수사례로 선정하기까지 해, 정책의 방향성과 효과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결국 아이 양육과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던 정책의 선한 의도와 달리, 돈이 시중에 돌지 않고 은행 금고로 직행하는 셈이다.

이는 정부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해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각종 소비쿠폰을 발행하는 등 경기 부양에 안간힘을 쓰는 다른 정책 방향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만약 아동수당과 부모급여 4조 원이 본래 목적대로 양육 관련 소비에 온전히 사용된다면, 매년 막대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강력한 내수 진작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현금 지급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법은 현금뿐 아니라 상품권으로도 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고 있다.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지역화폐'이다.

정부가 아동수당과 부모급여를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할 경우, 사용처와 사용 기한이 명확히 제한됨에 따라 지역 내 소비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현금성 급여가 재테크 수단으로 전용되는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복지 정책의 본래 목적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역 상권 활성화 및 자금의 선순환 구조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