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핑하는 정책실장
김용범 정책실장이 29일 경북 경주 APEC 미디어센터에서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과 미국은 총 3천500억 달러(약 501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금 중 2천억 달러(약 286조 원)를 현금 투자하되 연간 한도를 200억 달러(약 28조 6천억 원)로 제한하기로 29일 합의했다.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도출된 이번 합의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약 5개월간 이어진 양국 간 관세 협상이 사실상 종결 단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양국은 상호관세 세율을 지난 7월 합의된 대로 15퍼센트(%)로 유지하고, 대미 투자에 대한 '상업적 합리성'을 문건에 명시하는 등 투자 안전장치를 강화하는 데 뜻을 모았다.

이재명 대통령실의 김용범 정책실장은 10월 29일 브리핑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성과로 한미 관세 협상의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김 실장은 총 3천500억 달러의 대미 금융투자가 현금 투자 2천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 1천500억 달러(약 215조 원)로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이 미국과 합의한 5천500억 달러(약 787조 8천억 원) 규모의 금융 패키지(package)와 유사한 구조이지만, 한국은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하여 국내 외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고 강조했다.

연간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투자가 이루어지므로,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안정적인 투자가 가능하며 시장에 충격이 없을 것이라고 김 실장은 전망했다.

아울러 외환 시장의 불안이 우려될 경우, 납입 시기와 금액의 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악수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이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마스가 프로젝트(Masca Project)'로 명명된 조선업 협력 1천500억 달러는 한국 기업이 주도하며 투자 외에 보증도 포함하는 방식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투자 원금 회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다층적인 안전장치 또한 마련되었다.

김 실장은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하기로 양해각서(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 문안에 명시했으며, 투자위원회 및 협의위원회를 가동하여 투자 가치가 없는 프로젝트를 걸러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원리금 상환 전까지는 한미 양국이 수익을 5대 5로 배분하고, 20년 이내에 원리금을 전액 회수하지 못할 경우 수익 배분 비율을 조정하기로 상호 양해했다.

다만 원리금 회수 후에는 수익 배분을 9대 1(미국 9, 한국 1)로 나누는 미국 측 주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 실장은 특정 프로젝트에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프로젝트로 보전할 수 있도록 '우산 형태'의 특수목적법인(SPC, Special Purpose Company) 구조를 설계하여 손실 리스크(risk)를 크게 낮췄다고 밝혔다.

대미 투자 프로젝트 추진 시 한국이 추천하는 한국 업체 선정과 한국인 매니저(manager) 채용 또한 합의에 포함된 사항이다.

이는 이미 타결된 미일 관세 협상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이 상당수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확보했다고 김 실장은 평가했다.

한미 정상의 대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번 합의에 따라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자동차 관세는 기존 25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인하될 예정이다.

상호관세 15퍼센트(%)는 지난 7월 말 합의 이후 이미 적용 중이다.

이와 함께 품목관세 중 의약품과 목제 등은 최혜국 대우를 받게 되며, 항공기 부품, 제네릭(generic) 의약품,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천연자원 등에는 무관세가 적용될 것이라고 김 실장은 밝혔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경우, 우리의 주요 경쟁국인 대만과 비교하여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합의했으며, 쌀과 쇠고기를 포함한 농업 분야의 추가 개방은 막고 검역 절차에서 소통을 강화하는 수준으로 합의점을 찾았다고 덧붙였다.

향후 절차와 관련해서는, 대미 투자 펀드(fund) 기금을 신설하기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첫날로 소급하여 관세 인하가 적용될 것이라고 김 실장은 설명했다.

또한 "안보 패키지 협상의 경우 '팩트 시트(fact sheet)'를 만들기까지 2~3일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나, 통상 분야 엠오유(MOU)는 거의 문안이 마무리됐다"고 전하며, 양국 산업부 장관이 서명한 후에는 법 제출 절차가 즉시 착수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전체 협상 과정에 대해 김 실장은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전망이 밝지 않았으나 오늘 급진전이 됐다"고 말하며, "우리가 양보해서 타결이 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 미측의 양보를 통해 유리한 합의를 이끌어냈음을 시사했다.

브리핑하는 정책실장
김용범 정책실장이 29일 경북 경주 APEC 미디어센터에서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사진=연합뉴스


다음은 김 실장, 위 실장과의 문답이다.

--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 추진 잠수함 연료 공급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향후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나.

▲ (위 실장) 법적인 절차는 검토를 해봐야 정확한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기존의 한미 원자력협정도 손을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핵연료는 군사적 목적에 쓰기 때문인데, 기존 원자력 협정은 군사적 목적에는 적용되지 않아서 조정을 해야 절차가 완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협상 과정에서 통화 스와프가 거론됐는데 외환 시장에 부담이 있다고 알리기 위한 전략이었나, 진짜 요구한 것인가. 투자위원회는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며 오늘 합의한 결과물이 '팩트시트'(사실관계 설명자료)로 나오나.

▲ (김 실장) 3천500억 달러 현금 투자에 관해 당시에는 연도 한도가 없어서 '미국이 일시에 (투자금을) 요구한다면 외환시장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다. 외환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명백한 것인데 이 충격을 해결할 방법은 미국에서 고민을 해줘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걸 필요 조건이라고 했다. 그래서 통화 스와프가 자연스럽게 (의제로) 떠올랐다.

미국도 우리가 제시한 내용이 재무부 등에서 봤을 때 충분히 납득이 가는 문제 제기라고 (봐서) 같이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통화 스와프가) 규모 차원에서도 적합하지 않고 장기 투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는 내부 결론도 가졌다. 우리가 제안을 보냈을 때는 한 달간 미국에서 반응이 없었다. 내부적으로 검토해서 난감했을 거다.

원화를 '컨버젼'하는 안도 한때 나왔는데 둘 다 미국에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한국이 주장하는 외환시장 문제에 대한 상호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연도별 한도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다음부터 연도별 한도로 협상이 옮겨가면서 통화 스와프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협상 전략인지를 떠나 우리로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그것이 논의를 실질화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팩트시트는 안보와 합쳐 2∼3일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과 관련된 업무협약(MOU)은 거의 문안이 마무리돼있다. 미국과 우리가 수십번 서로 실랑이를 벌였기 때문에 양국 간 세부 합의 내용은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안보 쪽과 같이 조정될텐데 통상 분야는 MOU가 훨씬 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투자위원회는 미국 상무장관이 위원장이고 미국 쪽에서 위원회를 만들 것 같다. 우리 쪽이 위원장인 것은 협의위원회다. 그 위원장은 한국의 산업통상부 장관이다. 양 위원회가 상호 협의하면서 투자 프로젝트를 고르고 의견을 낸다. 우리 협의위원회가 전략적·법적 고려사항을 투자위원회에 의견을 제시하게 돼 있고, 투자위원회는 협의위원회에 프로젝트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게 돼 있다.

브리핑하는 안보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9일 경북 경주 APEC 미디어센터에서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투자금을 환수하기 전까지는 이익 배분 비율이 5대 5인데, 그 이후의 수익배분은 어떻게 되나.

▲ (김 실장) 마지막까지 양국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있던 부분이다. 일본의 경우 비율이 5대 5로 돼 있고, 원리금이 회수된 이후 이익 단계에는 9대 1로 돼 있다. 우리는 5대 5 부분에 마지막까지 굉장히 강한 문제 제기를 했으나 우리가 원하는 비율로 명시하는 데까지 합의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다만 사업을 하다가 20년 이내에 (원리금이) 안 나올 수 있겠다는 상황이 뚜렷해지면 (이익 배분 비율을) 조정하기로 했다. 양국 간 협의 과정에서 그 표현을 넣을 때 암묵적으로 얘기했으나 명시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우리로서는 원래 희망한 숫자를 명확하게 넣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 문구를 통해 실질적으로 기대하는 정도의, 우리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이익 배분 장치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연도별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표현을 아주 명확하게 MOU에 넣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1조에 들어가 있다.

상업적 합리성이란 사업을 심사할 때 원리금 회수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사업, 양호한 사업으로 선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익 배분) 비율이 높게 설정돼도 사업에 손실이 나면 별로 의미가 없지 않나. 5대 5 부분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초기에 더디게 회수되는 사업은 흐름이 보이면 양국이 협의해 비율을 고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었다.

-- 한미관세협상 세부 내용은 우리보다 한 달 앞서 타결한 일본의 관세협상과 어떤 점에서 차별점이 있나.

▲ (김 실장) 일본 구조와 유사한 면도 있다. 일본과 미국이 우리보다 먼저 9월 3일에 MOU에 서명했고, 우리에게 같은 조건으로 해야 한다는 것도 많이 있었다. 일본의 딜이 우리에게 준거가 됐지만 어떤 면에서, 5대 5의 이익 배분 비율 같은 것은 야속한 면도 있었다. 일본이 확보한 안전장치는 우리 MOU에도 전부 그대로 반영됐다. 일본에 비해 우리가 결여된 것은 없다.

일본 MOU에 없는 것을 우리가 협상 과정에서 많이 추가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대외 자산이 월등히 많은 나라고 기축 통화국이다. 우리만큼 외환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덜하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몇 가지 일본에 없는 장치가 우리 쪽에 추가됐다.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투자하고, 현금 투자 규모도 일본은 5천500억 달러로 돼 있는데 우리는 3천500억 달러의 전체 패키지 중 2천억 달러만 현금 투자여서 일본 대비 36% 수준이다. 그리고 일본과 달리 우리는 조선 분야 투자를 명시했다.

일본에 없는 연간 투자 한도 200억 달러도 명시적으로 설정돼 있다.

그리고 집념을 가지고 많이 얘기해서 반영시킨 부분은 (투자금을) 선불 방식으로 한꺼번에 보내는 게 아니라, 사업의 진척 정도인 '기성고'를 따져 사업이 진행돼 진도가 나가고 실제 투자가 이뤄진 만큼만 돈을 분납한다는 근거를 만들었다.

여러 프로젝트를 할 텐데 프로젝트별로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드는 게 아니고, 하나로 '엄브렐라(우산식) SPC'를 만들어서 사업이 더딘 쪽에서 잘 나온 쪽의 이익을 당겨서 회수할 수 있게 하는 부분도 (MOU에) 반영이 돼 있다.

한국인 프로젝트 매니저를 선임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우리는 국제금융시장이 일본보다 얇기 때문에 가산금리 상한을 일본보다 30BP 높게 반영했고, 거기에 대한 기준금리도 2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를 적용해 같은 금액을 투자해도 일본보다 1.1%p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게 여기저기 장치를 많이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