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법정 출석을 위해 교도소 밖으로 나온 자니네 아녜스 볼리비아 전 임시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볼리비아 대법원은 5일(현지시간) 자니네 아녜스(58) 전 임시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모의 등 혐의 재판을 취소하고 석방 명령을 내렸다고 현지 일간 엘데베르와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아녜스 전 임시 대통령은 지난 2021년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으며, 이번 결정으로 약 5년 만에 석방된다.

로메르 사우세도 볼리비아 대법원장은 기존 재판 과정에 명백한 절차상 흠결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아녜스 전 임시 대통령에게 일반 형사 절차 대신 전직 국가원수를 대상으로 한 형사 사법 절차를 적용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판 전체를 무효화하고 즉시 석방을 지시했다.

아녜스 전 임시 대통령의 혐의는 지난 2019년 볼리비아 대선 이후 발생한 정치·사회적 혼란과 연계된다.

당시 4선 연임에 도전한 에보 모랄레스(66) 전 대통령이 개표 과정의 불투명성으로 승리 발표되자 대선 불복 시위가 확산됐다.

시위 과정에서 군·경찰과 충돌이 벌어지며 37명이 사망하는 등 혼란이 가중됐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대선 3주 만에 사임하고 아르헨티나로 망명했다.

이 권력 공백 속에 상원의장직을 승계한 아녜스 전 임시 대통령이 헌법 규정에 따라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우파 성향의 아녜스 임시 정부는 망명 중인 모랄레스 전 대통령에게 테러·선동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그의 집권기 정책 유산을 청산하는 데 나섰다.

그러나 지난 2020년 재선거에서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후계자인 루이스 아르세(62)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정세가 재역전됐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혐의를 벗고 1년 만에 귀국했으며, 아녜스 전 임시 대통령은 쿠데타 모의와 테러 선동 혐의로 다음해인 2021년 체포됐다.

재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아녜스 전 임시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이를 부당한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하며 반발해 왔다.

이번 대법원 결정은 지난달 19일 치러진 대선 결선에서 중도 성향 로드리고 파스(58) 후보가 당선되며 20년 만에 사회주의 좌파 집권 시대가 종식된 지 약 열흘 만에 나온 것이다.

파스 후보의 승리는 우파·중도 진영의 부활을 상징하며, 아녜스 전 임시 대통령 석방은 정치적 긴장 완화와 재심의 신호로 해석된다.

아녜스 전 임시 대통령은 자신의 엑스(X, 구 트위터)에 석방 소식을 전하며 “거의 5년간 이어진 자유의 박탈이 내 신념을 꺾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불의는 감옥에만 있는 게 아니라 편견 너머를 보려 하지 않는 이들의 시선 속에도 있었으며, 뒤에서 지켜줄 힘을 갖지 못해 쉽게 표적이 됐지만, 나는 진실의 힘으로 나를 방어했다”고 덧붙였다.

아녜스 전 임시 대통령의 석방은 볼리비아 정치권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