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들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여 국고 환수 등 추가적인 법적 대응이 사실상 어려워질 전망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7일 자정까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김만배 씨를 비롯한 민간업자들의 1심 판결에 대한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주요 사건에서 검찰의 이례적인 결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항소 포기 배경을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형사 사건은 판결에 불복할 경우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항소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 형사소송법상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1심에서 선고된 형량보다 높은 형을 부과할 수 없다.
유동규 전 본부장과 김만배 씨 등 피고인 5명은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한 상태다.
이들은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해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측에 유리하도록 공모 지침서를 작성하고, 화천대유가 참여한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도록 해 7천886억원의 부당이득을 얻고 공사에 4천89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지난 2021년 10월부터 순차적으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징역 8년과 벌금 4억원, 추징금 8억1천만원을 선고했다.
화천대유의 대주주인 김만배 씨에게는 징역 8년과 428억원 추징이 내려졌다.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징역 4년을,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 투자사업팀장으로 일한 정민용 변호사에게는 징역 6년 및 벌금 38억원, 추징금 37억2천200만원이 선고됐다.
특히 재판부는 공사 측 인물인 유동규 전 본부장과 정민용 변호사에게는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을 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기소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죄가 아닌 형법의 업무상 배임죄만 인정하여 양형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죄는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징역, 50억 이상인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는 반면, 형법의 업무상 배임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검찰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주요 사건에서 선고 형량이 구형량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항소를 포기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서울중앙지검은 항소 포기와 관련해 별도 입장을 내지는 않았다.
당초 검찰 내부에서는 항소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법무부는 이미 검찰 구형량의 절반 이상인 중형이 선고되었고 법리 적용에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막판까지 논의를 이어간 끝에 법무부 의견대로 항소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 차원에서 항소 포기 지침을 내리지는 않았고 '이게 맞냐'는 의견은 냈다"며 "검찰만능주의, 검찰제일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데에는 당정이 추진하는 배임죄 폐지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기업의 경영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이유로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대장동 비리 1심 재판부도 선고 당시 "현재 배임죄는 완전 폐지 시 부작용이 예상돼 처벌이 가능한 영역에 대한 대체 입법을 추진 중이고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보도를 접했다"면서 "장래 적용에 대해서 논의가 진행 중인 것 같고, 무엇보다 배임죄가 현존하는 한 (피고인들을) 구속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검사들이 (죄가) 되지도 않는 것을 기소하거나, 무죄가 나와도 책임을 면하려고 항소·상고해서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며 검찰의 무분별한 항고 관행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점도 검찰 결정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시 정 장관은 "제도적으로 규정을 다 바꾸려고 한다"고 답변했으며, 이후 법무부는 관행적인 상소를 자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국가배상 소송 등에 대한 상소를 포기해 왔다.
하지만 이 사건은 현재 심리가 중단된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 비리 관련 재판과도 연관되어 있어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야권에서는 정부와 검찰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Facebook)에 "검찰 수뇌부가 당연한 항소를 막거나 방해하면 반드시 직권남용, 직무유기죄로 처벌받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이 자정까지 항소를 제기하지 않자 그는 "11월 8일 0시 대한민국 검찰은 자살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