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질의 답변하는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대장동 개발 비리' 피고인들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 결정이 내려진 지 하루 만인 지난 8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정진우 지검장이 법무부에 사의를 전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번 결정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의 항소를 포기한 이례적인 조치로 평가받으며, 지휘부의 항소 포기 결정이 검사장 사의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민간업자 김만배 씨를 비롯한 5명의 피고인에 대해 항소 시한인 지난 7일 자정까지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대검찰청을 포함한 검찰 지휘부는 당초 기존 업무처리 관행에 따라 항소를 제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법무부 측에서 항소가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논의 끝에 '항소 금지'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처럼 상급 기관인 법무부의 '항소 반대' 의사를 검찰 지휘부가 수용한 것이다.

형사 사건은 판결에 불복할 경우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항소해야 하는데,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 형사소송법상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된다.

반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김만배 씨 등 피고인 5명은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한 상태다.

1심 재판부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징역 8년과 벌금 4억원, 추징금 8억1천만원을 선고했다.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의 대주주인 김만배 씨에게는 징역 8년과 428억원 추징이 내려졌다. 대장동 개발사업을 설계하고 시작한 남욱 변호사는 징역 4년을, 그와 함께 사업을 설계하고 민간업자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익 구조를 짠 정영학 회계사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공사 전략사업실에서 투자사업팀장으로 일하며 남욱 변호사 등 민간업자들과 공모해 범행을 저지른 정민용 변호사에게는 징역 6년 및 벌금 38억원, 추징금 37억2천200만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공사 측 인물인 유동규 전 본부장과 정민용 변호사에게는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을 선고했으나, 개발사업의 전체 손해액을 정확하게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검찰이 기소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죄가 아닌 업무상 배임죄로 형을 정한 바 있다.

법사위 국정감사 출석한 검사장들

지난 10월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 국정감사에서 수도권 소재 검찰청 검사장들이 출석해 감사 시작을 기다리고있다. 왼쪽부터 김태훈 서울남부지검장,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 구자현 서울고검장.사진=연합뉴스

검찰 내부에서는 수뇌부의 항소 포기 결정에 대한 강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공소 유지를 맡았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e-Pros)'에 '대장동 개발 비리 관련자 5명에 대한 항소장을 제출하지 못한 경위'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강백신 검사는 이 글에서 "대검찰청이 법무부에 항소 여부를 승인받기 위해 보고를 했고, 검찰과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항소의 필요성을 보고했으나 장관과 차관이 이를 반대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적었다.

강백신 검사가 정리한 타임라인에 따르면, 지난 10월 31일 1심 선고가 이뤄진 뒤 지난 3일 검찰 수사팀과 공판팀은 만장일치로 항소 제기를 결정했다.

그러나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대검찰청에 승인을 요청한 후 6일 오후 7시 30분경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이 재검토해보라고 하면서 불허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수사팀이 대검찰청에 항의했으나 지휘부는 항소를 고수하라는 입장을 밝혔고, 전결 권한이 있는 중앙지검장의 판단하에 항소장을 제출해달라는 요청에도 이준호 중앙지검 4차장검사는 "대검찰청에서 불허했고, 검사장(중앙지검장)께서도 불허해 어쩔 수 없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이준호 차장검사는 불허 지휘의 근거와 이유에 대해 '대검찰청으로부터 배임 유죄 선고 및 유동규 전 본부장은 구형보다 중형이 선고돼 항소의 실익이 없다'는 취지를 통보받았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현재 심리가 중단된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 비리 관련 재판과도 연관되어 있어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1심 재판부에서는 '성남시 수뇌부'와 민간업자들 사이에 의사 전달이 있었다고 평가했으나, 이재명 대통령의 연관 가능성에 대한 직접적인 판단은 내리지 않고 유보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정진우 지검장을 시작으로 당시 의사 결정에 관여한 검사들이 연이어 사의를 표명하거나, 수사·공소 유지 검사를 비롯한 일선 검사들의 추가적인 반발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